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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최참판댁 경사 났네> 2018년 마지막 공연을 보고

by 이우기, yiwoogi 2018. 10. 28.



지리산의 시샘인가 섬진강의 심술인가.

내가 처음 하동 최참판댁에서 큰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본 것이 2018527일이고 그 뒤로 1028일까지 모두 여덟 번 하동을 찾았는데 대부분 날씨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새 비가 오는 바람에 배우들이 문설주에 기대어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진을 본 적은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날씨는 거의 문제 없었다. 아니다. 815일 광복절 특별공연 때는 37도에 육박하는 더위 때문에 모두가 곤죽이 되었었다. 그래도 공연은 무사히, 성공적으로 해냈다. 당연한 일이지만.

 

1027일 공연 때는 용이네 앞에서 벌어지는 제1부에서 버나놀이를 위태위태하게 진행했다. 바람, 그것도 갑작스런 돌풍이 부는 바람에 관객이 던진 버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고, 버나놀이의 일인자인 주인공도 작은 실수를 했으니 말이다. 비도 오락가락했다. 지리산 아래에서 재능꾼, 예능꾼 몇몇 모여 풍악 울리고 웃음거리 던지며 논다고 한들 그것을 시샘하다니, 지리산 마고할매가 밉다. <효자전> 할 때 산삼할매에게 부탁을 좀 넣어야겠다. ‘정감막걸리 두어 병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게 어제였고 1028일인 오늘은, 그래서 아예 제1부를 본마당에서 펼쳤다. 그깟 바람 때문에 피난가고 그까짓것 비 때문에 도망갈 큰들이 아니지만 관객들 추울까봐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애써 설치해 놓은 무대장치들이 날아갈지도 모르긴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 도중에 바람 때문에 이런저런 장치들이 흔들거리기에 조마조마했다. 배우들의 모자도 걱정이었다. 아뿔싸, 한 배우는 모자가 벗겨지는 바람에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 이를 어째. 참 지리산 시샘과 섬진강 심술이 좀 심하시다. 마지막을 예쁘게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진 못할망정.

 

극단 큰들이 날씨에 흔들릴 조직이던가. 연기는 흠 없이 이어졌고 악사와 연출도 빈틈없이 연결되어 마침내 대미를 장식했다. 관객들은, 어제보다는 좀 적게 왔지만 끝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박수 치고 웃고 떠들었다. 관객의 웃음 위치는 대개 비슷한데, 요즘은 좀 달라진 것 같다. 어른 서희가 가마에서 내릴 때, 지도를 펼쳐 길상의 위치를 보고할 때 환호성이 점점 커진다. 꼼꼼하게 비교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나는 1시간 내도록 헤벌쭉 웃고 있는 편이니까.

 




울지 않을 줄 알았다.

오늘까지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여덟 번 보았다. 2010년부터 한해에 열 번 남짓 보아온 골수 팬도 있다. 나는 올해 처음 하동을 찾았다. 큰들 마당극을 본 건 몇 번 있었지만 거의 일회성이었는데 올해 단골이 되었다. 그래서 웬만한 대사는 외우다시피 한다. 어디에서 배우가 우스꽝스런 몸짓을 하고 어디에서 누가 아재개그를 할지도 대충은 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배우들의 연기몸짓을 따라하거나, 대사를 먼저 나지막히 내뱉기도 한다. 요즘은 억지로 참는다. 참지 않으면 방해될까봐.

 

그런데 말이다, 정말 그런데…. 눈물샘을 자극하는 건 어쩌지 못하겠다. 어린 서희 애기씨가 쫓겨가며 가마에 탈 때, 태극기 흔들며 독립군가부를 때, 임이가 일본군에 잡혀 갈 때, 그 임이와 길상이 광복 후 돌아와 각각 어머니와 아내(서희)를 끌어안을 때. 나는 울고 만다.

 

어린 서희가 가마에 탄 뒤 임이네, 강청댁 등 동네 주민들이 그런데 서희 애기씨가 어디를 가노?”라고 묻고 저 압록강 건너 간도로 간다 안쿠나!”라고 답하면 간도? 간도 크다.”라는 아재개그가 나오지만, 그것으로 흐르는 눈물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삼촌과 숙모에게 모든 재산을 뺏기고 쫓겨가는 서희가 복수를 다짐하는 화살 같은 독설을 앙칼지고 표독스럽게 내뱉긴 했지만, , 그것은 너무나 허망해 보였다. 불쌍하고 가련한 것.

 

가장 눈물 나는 건 임이가 끌려가는 장면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하였거니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명장면이다. 연기로서도 명장면이고 임이와 그 어미의 울음소리로서도 명장면이다. 일제강점기 슬프고 쓰라렸던 우리 민초들의 불쌍하고 가련한 삶을 가장 함축적이고 극적으로 보여준 명장면 중 명장면이다. 나는 울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그 임이가 광복 후 돌아와 어머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원초적인 생명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그렇게 어미를 부르며 죽어간, , 말 못할 우리들의 할머니들은 얼마나 얼마나 많을 것인가.

 



김연아, 박채린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해 5월에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처음 봤을 때다. 미리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최참판댁 옆 별채로 갔다. 거기에 에스비에스(SBS)에서 방영한 <토지>에 출연했던 어린 서희의 사진이 보였다. 배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 밑에 이렇게 써놨다. “찢어죽이고 말려죽이고 말 테다. 내 이 수모를 반드시 갚아줄 테다!” 섬칫하다.

 

이런 대사를 어린 서희 역을 맡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해낸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악양초등학교 5학년 박채린이 했다. 1014일부터 오늘까지 세 번은 악양초등학교 4학년 김연아가 했다. 만약 그렇게 바뀌었노라고 소개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절대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은 생긴 것도 닮았고 키도 닮았고 목소리도 닮았다. 더군다나, “찢어죽이고 말려죽일 테다!”라고 할 땐 등골이 오싹할 만큼 앙칼진 것도 닮았다.

 

우연하게도 20109월 첫 공연할 때 어린 서희 역을 맡았던 분을 만났다. 서희 애기씨 1세대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원서를 넣어놓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단다. 세월의 흐름이란 이렇다. 그의 아버지의 청에 의하여 10년 전 서희 역을 맡았던, 다 큰 아가씨가 <심청가> 한 대목을 하였다. 어찌어찌하여 왕비가 된 심청이 전국의 봉사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할 적에, 심봉사가 뺑덕어멈과 함께 궁궐을 찾아가다가 사기를 당하고마는 대목을 불렀다. 판소리 가락에 익숙지 않아 어디에서 추임새를 넣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어느덧 내가 그 심봉사가 되어 있었다.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전지원 합격을 기원한다.  

 

이제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나, 이제 현역에서 물러난 박채린이나 나중에 더 큰 배우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길을 걷게 되더라도 한때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인상 깊게 연기하던 그 열정과 침착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어린 소녀들이 보여준 혼신의 연기에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김연아는 내년 3, 꽃 피고 새 울 때 다시 만나길 빈다.

 



여섯 달 동안 하동을 사랑했다.

5월부터 10월까지 여섯 달 동안 하동을 여덟 번 찾았다. 실제 공연은 20회 가량 했는데 모두 다 가 볼 수는 없었다. 열 번 보는 게 목표였는데 쉽지 않았다. 진주에서 하동 최참판댁까지 국도로 가면 1시간 20분 걸린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에는 여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참 예쁘고 정다운 길이다. 고불고불 황토재를 넘기도 하고 햇빛 부서지는 섬진강을 옆에 끼고 달리기도 한다. 길가에 펼쳐놓은 난전에서 배도 사고 감도 산다. 그렇게 산 것 중 어느 것은 돌아오는 길에 큰들 사무실에 널짜주고온다. 하동군에서 애써 마련해 놓은 알프스 로컬푸드라는 곳에서 이것저것 맛난 것도 산다.

 

평사리 식당가에서 파전도 먹고 도토리묵도 먹고 비빔밥도 먹고 국수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밀면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커피도 마셨다. 모자도 사고 군밤도 사고 유과도 샀다. 구경도 많이 했다.

 

한산사올라가서 그 너른 평사리 땅들을 내려다 보았다. 허수아비도 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느린 흐름도 느껴 보았다. 하늘을 나는 새도 보았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헹글라이더였다. 가을엔, 특히 어제오늘은 감을 보았다. 또 감을 보았다. 또또 감을 보았다. 정말 감의 고장이었다. 볼 게 많고 느낄 게 많은 곳이다. 하동은 그런 곳이다. 큰들 덕분에 하동과 많이 친해졌다. 하동 악양 등촌에 집 한 칸 지어놓고 달 뜨는 시간부터 달 지는 시간까지 막걸리 마시는 선배도 만났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큰들과 하동에 절~!

 




내년까지 어떻게 기다릴까 걱정이다.

이제 하동에서 하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끝났다. 다시 보려면 내년 3월은 되어야 할 것이다. 넉 달을 기다려야 한다. 1년 중 여덟 달은 공연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하지 않는다. 공연을 하는 동안에도 사실은 매주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것까지 계산하는 것을 보면 이것도 병인가 싶다.

 

내년 공연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걸 미리 짐작하고 922일 추석 전에 펼친 공연을 모두 동영상으로 찍어놨다. 그동안 찍은 사진은 500장은 넘을 것이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이렇게 준비성 뛰어난 스스로에게 박수~!

 

큰들 마당극은 묘한 매력이 있다. 볼 때마다 대사와 몸짓과 음악들이 다르게 들리고 보인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한번은 배우들의 표정만 열심히 본다. 한번은 대사만 열심히 듣는다. 한번은 악사들이 직접 두드리는 음악만 열심히 듣는다. 한번은 미리 준비된 음향만 열심히 듣는다. 한번은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을 열심히 본다. 한번은 서희를 본다. 한번은 조준구를 본다. 한번은 길상과 독립군을 본다. 한번은 일본군들을 본다. 한번은 강청댁, 임이네를 본다. 한번은 태극기를 본다. 한번은 독립군가를 따라 부른다. 이렇게 볼 때마다 관심을 조금만 돌리면 모든 게 새롭게 보이고 다르게 보인다. 얼마나 큰 매력이자 마력인가.

 

그래서 나는 내년 꽃 피고 새 우는 3<최참판댁 경사 났네> 정기 공연 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릴 수 있다. 그렇지만 하동이 그립고 악양이 보고 싶고 평사리가 궁금해지면, 큰들 마당극 없더라도 달려갈 수 있다. 등촌리에서 웅크리고 앉아 저녁달 보고 있을 내 좋아하는 순남 형이 있으니….

 

2018. 10. 28.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