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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

초등 어휘 삼천?

by 이우기, yiwoogi 2018. 3. 8.

초등 어휘 삼천?

 

팟캐스트 라디오에서 이런 광고를 가끔 듣는다.

 

1: 한글도 남보다 빨리 깨치고 참 똑똑했는데, 갈수록 실력이 뒤처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2: 혹시 초등학교 교과서 본 적 있어요? 어려운 어휘가 너무 많아요. 학교에서는 어휘의 개념을 하나하나 설명해 줄 시간이 정말 부족하잖아요.

1: 그럼 어떡하죠?

2: 내 아이의 어휘만큼은 내가 책임져야죠. 어휘 공부의 정석~.

아이들 합창: 초등 어휘 삼천! 초등 어휘 오천!

2: 검색창에 초등 어휘 삼천을 쳐 보세요.

 

처음 들을 땐 뭐 이런 광고를 팟캐스트에서 하는가싶었다. 다음엔 뭐 이런 광고가 다 있나싶었다. 나중엔 , 우리나라 초등학교 아이들이 뜻도 모르는 어휘가 가득 든 책을 들고 공부하고 있구나싶었다. 결국은 그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뭐 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들이 어려운 어휘 때문에 고생이 너무 많다.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안쓰러운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선생님들은 책임이 없다.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학교수이거나 초등학교 선생님 가운데 내로라하는 분들일 텐데, 이런 것을 문제라고 생각지 않을까. 이해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어려운 어휘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어려운 어휘인가 아닌가는 학생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그 나이 어린이들의 지식 수준에 견주어 어려운 어휘가 많다는 건 맞는 듯하다. 그럼 초등학교 교과서를 잘못 만들었다는 뜻 아닐까. 어려운 어휘를 좀더 쉬운 말로 바꿔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고 치자. 그럼 선생님들은 어려운 어휘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이해하도록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하나하나 설명해 줄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고 하면 어떡하라는 것일까. 평균 수준에 맞게 수업을 이끌어간다고 하더라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배려를 해 줘야 하는 곳이 학교 아닌가. 몇몇은 잘 이해하고 나머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업을 진행하기만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일을 문제라고 생각하면, ‘초등 어휘를 따로 가르쳐 줄 만한 교재를 만들어 팔 게 아니라 교육현장에 대하여 뭐라고 한마디쯤 해 줄 만하지 않을까. 교과서를 더 쉽게 만들라고 하거나 선생님더러 어휘의 개념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게 맞을 듯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가운데 참고서, 교재 만드는 업자들만 신났다. 그런 꼴 아닌가.

 

인터넷 서점에 가서 초등 어휘로 검색해 보았다. ‘초등 어휘 바탕 다지기’, ‘국어의 기초가 딱 잡히는 초등어휘 따라 쓰기’, ‘모국어가 공부의 열쇠다 초등 어휘 1단계’, ‘마법의 상위권 어휘’, ‘초등 어휘의 달인이 되는 사자성어’, ‘교과서에서 쏙쏙 뽑은 초등 필수 어휘’, ‘역사와 문화로 배우는 초등 교과서 어휘 68’, ‘초등 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어휘 충전소’, ‘초등 5학년 국어 어휘력을 잡아라따위 책들이 나온다. 놀라 자빠질 정도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일부러 어려운 어휘를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게 아닌가 의심해 본다. 그래 놓고는 참고서, 교재 만드는 업자들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 본다. 설마 그럴 리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진주교육대학교 정보주 전 총장님의 책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과 관련한 문제들을 거론했다. 나는 초등 어휘 삼천’, ‘초등 어휘 오천과 같은 어휘 교재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자꾸 떠올라 어지러웠다. 교과서 집필자들도, 선생님들도, 부모들도 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 아닐까 싶다.

 

2018.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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