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다. 장장 1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주성, 진주교, 천수교, 남강에서 펼쳐진 진주남강 유등축제는 끝났다. 축제 기간에 진주시민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축제장에서 화려하고 멋진 유등을 즐겼다. 축제는 끝났지만 논란은 남았다. 논란 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가만히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진주시는 2017년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유료화 3년 만에 재정자립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전체 축제경비 40억 원 중 유료수입은 44억 원(입장료 33억 원, 입장료 외 11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재정자립도는 유료화 첫해인 2015년 80%, 2016년 85%에서 올해는 110%로 완전 자립화를 넘어 흑자 축제를 이뤄냈다고 주장했다. 유료화 3년 만에 한국 대표를 넘어 세계에 자랑하는 ‘글로벌 축제’로 비상한 진주남강유등축제가 4억 원 정도의 흑자를 기록하는 ‘홀로서기’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쓴 돈은 40억 원인데 44억 원을 벌었으니 4억 원이 남은 것이다.
15일간의 축제 기간 중 8일간 비가 오는 어려운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 입장객 41만 명, 무료 입장객 26만 명 등 총 67만 명이 입장해 지난해보다 20% 증가했다고 한다. 정말 많은 인파가 진주에 몰려든 것이다. 게다가 추석을 기점으로 개천절, 한글날, 대체휴일, 특별휴일 등 연휴가 10일간 이어지면서 2015년 축제유료화 이후 최대 인파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유등축제와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개천예술제를 비슷한 기간에 연 것도 관객을 끄는 요소였을 것이다.
페이스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수많은 지인들이 축제장을 찾아 갖가지 사진을 올리면서 축제를 온몸으로 즐겼다. 불꽃놀이 동영상을 올린 이도 있고 가족과 함께한 추억도 있다. 낮에 둘러본 사람도 많고 밤늦도록 술 마셨다는 분도 있다. 멀리서 진주를 찾아온 친척들을 일일이 안내하면서 고생한 분도 많다. 진주 10월 축제는 많은 사람에게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안겨주는 ‘명문축제’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불꽃놀이를 세 번 했는데, 두 번은 비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잠시 대피하기는 했지만 축제장을 떠나지 않았다고들 한다.
여기서 잠시 유료화 이전에 발표했던 진주시의 보도자료를 근거로 한 언론보도를 뒤져본다. 2012년 진주남강유등축제, 개천예술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등 진주 10월 축제를 찾은 관광객은 280만여 명으로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1400억 원이었다. 2013년에는 270만여 명이 방문하여 15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올렸다. 2014년에는 280만여 명이 방문하여 16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올렸다고 한다. 진주시가 관광객 숫자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어떻게 산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객관적인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진주시는 2015년 유등축제를 유료화한다고 할 때, 지난 몇 년 동안의 발표자료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것, 즉,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당시 언론보도를 아직 찾지 못했다.)
어쨌든 2012~2014년 3년 동안 진주 10월 축제를 찾은 관광객은 270만~280만 명이었다. 올해 축제장을 찾은 67만 명의 네 배 이상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이때는 서진주나들목, 진주나들목, 문산나들목 등 진주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출구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창원, 부산 방면에서 오는 사람들이 진성~진주나들목 구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더라는 경험담을 진주 사람들은 한두 번 들어봤을 것이다. 유료화 이후에는 이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들이 진주시내에서 뿌리고 간 돈은 무려 1400억~1600억 원이었다.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게 직접 쓴 돈을 포함해 이런저런 잠재적 효과까지 포함한다고 치더라도, 어쨌든 그만한 돈이 진주지역에서 쓰였거나 장차 쓰이게 될 것 아닌가. 유료화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면서 발표한 입장료 수익 44억 원의 네 배 이상이다. 1400억~1600억 원은 진주지역 식당, 숙박업소, 진주시, 축제위원회 등으로 들어가 시의 세수를 올리는 데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참가한 관광객으로 보나, 경제효과로 보나 유료화 이전이 이후보다 네 배 이상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의를 달 수가 없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유료화 이후 행사의 규모나 성과가 4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축제의 성공 여부를 참가자수와 경제적 이익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료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진주시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고 주장한다. 한 언론사는 ‘유등축제 유료화 이후 축제장에 펜스를 친 이후 축제장 바깥식당은 인건비조자 건지지 못한 점과 교통대책에 대해선 더 보완이 필요하다.’(경남일보)고 짧게 언급했다. 사실 축제장 바깥식당이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이다.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진주시민이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언론사는 축제장 인근 주민과 숙박업소 관계자의 인터뷰를 실었는데,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 ‘“시장이라는 게 뭔가. 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가”라며 “우리 시장은 독선적이다. 내년 선거에선 시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단디뉴스)고까지 보도했다.
이렇게 보도한 언론도 있다. “하지만 유등축제 전면 유료화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지역 시민단체인 ‘진주시민행동’과 ‘2018 희망진주 시민의 길’은 올해 축제에 앞서 “축제는 시민들의 것이어야 한다. 누구 한 사람의 치적을 위한 것이나 주판알 튕기는 돈벌이가 중심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라며 “유등축제의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함께 행복하게 즐기는 잔치로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진주시민이 부끄러워하는 축제, 시민이 격리되는 축제가 어떻게 그 미래가 있겠는가?”(쿠키뉴스)라고 주장했다.
축제가 끝나고 닷새 뒤 10월 20일 저녁 진주성을 찾았다. 호국사도 창렬사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서장대로 오른다. 사위는 어두웠으나 아직 거두어가지 않은 청사초롱과 가로등 불빛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 진주성을 지키는 장군과 병사들 인형(?)은 아직도 서장대에서 천수교를 내려다보며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서장대에서 내려다본 천수교 인근 풍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단풍 빛깔과 어우러지면서 유등축제를 아직도 진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유등축제보다 훨씬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자연미는 인공미보다 훨씬 아름답다.
진주박물관 앞마당과 주변, 영남포정사 앞과 주변을 둘러보아도 유등축제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 등들을 다 거두어 가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며칠 동안 매달려야 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진주성 담벼락을 지키고 있는 포졸 인형에게 물어봐도, 공북문 앞에서 노닐고 있는 아낙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이 많고 많은 등들은 또 어디에서 1년 동안 숨어 있어야 할까. 천수교 아래 둔치에 흉물스럽게 쌓아둔 지난해 등을 보아온 터라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천수교 아래 둔치는 유등축제 때 쓴 시설물을 방치해 두는 지붕없는 창고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한숨을 내쉬는 시민이 많다.
시민들은 쌍쌍이 밤길을 걸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에게 유등축제에 대해 묻는 건 무의미했다. 잔디밭에 그대로 방치된 등들을 보면서, 축제가 남기고 간 아름답고 달콤한 추억보다 오히려 쓸쓸함과 을씨년스러움이 더해지는 듯했다. 진주성 밤길을 비추는 가로등은 오늘도 남강 대숲 소리를 자장가 삼아 졸고 있었다. 진주교도 아무일 없다는 듯, 촉석루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수교도 무엇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듯 무심코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축제는 끝났지만 논란은 남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놓는다.
내년에도 유료화할 것인가. 내년에도 15일 동안 잔치를 벌일 것인가. 올해 15일 동안 비 맞아가며 고생한 진주시 공무원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내년에도 올해처럼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인가. 내년에도 축제장 주변 숙박업소, 식당 주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것인가. 내년에도 교통대책을 이 정도로만 세울 것인가. 2012~2014년 관광객과 경제 유발효과에 견주어 유료화 이후 형편없이 짜부라진 규모와 성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 사이 동시에 한없이 짜부라져 버린 진주시민들의 긍지는 누가 되살려 줄 것인가. 올해 역할을 마친 등들은 모두 어디에 둘 것인가. 버려야 할 것들은 어디에 버리고 태워야 할 것들은 어디에서 태울 것인가. 온통 유등축제에 쏠린 관광객들의 관심을 개천예술제로도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드라마페스티벌을, 드라마 한 편 찍지 않고 지역 출신 연예인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곳 진주에서 굳이 해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 그의 사연은 왜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가.
질문은 많고 대답은 짧다. 내년 일은 내년 돼 봐야 아는 것 아니겠나. 대답을 조금이라도 바꿔볼 요량이라면 질문 가짓수를 더 늘리고 질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질문에 대하여 대답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곧바로 들이대야 한다. 밝은 조명을 받아 한없이 아름다워진 공북문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하염없이 올려다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공북문을 빠져 나오니 이런 현수막이 보인다.
<제48회 7만 위령제(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7만 군.관.민 승병 호국 영령 위령제)> 일시: 2017년 10월 20일 오후 2시 장소: 진주성 계사순의단 주최: (사)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위령제 제전위원회
두 가지 질문을 덧붙인다. 이 위령제를 진주남강유등축제와 함께할 방법은 없었을까. ‘군.관.민’이라는 표현보다는 ‘민.관.군’이라고 썼더라면 어땠을까.
2017.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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