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일요일 어머니 사시는 동네 이발소에 머리 깎으러 갔다. 1991년 군대 제대한 이후 줄곧 다니는 이발소이다. 이름은 ‘은하이용원’이다. 결혼으로 분가한 뒤 신혼집 근처 이발소에도 가 봤지만 이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발하러 간 김에 부모님을 뵐 수도 있었고 실제 이 집 아저씨 솜씨가 가장 마음에 든다.
머리를 깎은 뒤 어머니 홀로 계신 집에 찾아갔다. 거실 바닥이 차가웠다. 공기도 따뜻하진 않았다. 거실엔 김장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쪽엔 커다란 비닐에 김치가 담겨 있다. “오늘 아적길에 비가 와서 내도록 잤다. 정때 일나서 김치 좀 담갔다.”는 어머니께 “지지난 주에 김장 담그지 않았셨습니까?”고 여쭈었다. “아, 그기 그기 아이고…”로 시작한 어머니의 사연은 이랬다.
함양에 사시는 둘째 이모는 지난 초가을 암 진단을 받아 서울 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금은 함양으로 내려와 있다. 그동안 경과가 좋아져 다들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엊그제엔 농사 지은 사과를 한 상자 보내 왔다. 사과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겸 전화를 해 봤다. 그러다가 올해는 김장을 하지 못해 김치를 사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지지난 주 김장하고 남은 양념을 생각해 냈다. 마침 중앙시장에서 절인 배추를 판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여, 오후에 시장에 가서 절인 배추 다섯 포기를 사 와서 얼려 놨던 양념으로 김장을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막 김장을 마치고선 이것을 어떻게 보내줄까 궁리하던 중이셨다.
어머니는, 엊그제 이모가 사과를 보낼 때 적었을 함양 주소를 찢어버려 주소를 알기 어렵다며 성탄일인 월요일 막내를 불러 주소를 좀 받아 적으려고 할 참이었다. 성탄일은 공휴일이어서 택배 회사도 쉰다며 화요일쯤 부쳐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럴 것 뭐 있습니꺼? 내일 제가 한번 갔다 올게요.”라고 말했다. 반색하던 어머니는 “그라모 내일 아적에 무시 김치를 좀더 담아야겠다.”고 하신다.
월요일이자 성탄일 휴일인 어제 아내와 함께 다시 어머니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무를 사서 먹기 좋게 깍둑 썰어 맛있어 보이는 김치를 담가 놨다. 굴도 들었고 잘게 쫀 명태도 보인다. 추운데도 새벽 일찍 시장을 다녀온 게 분명했다. 사과 상자 안에는 배추김치 다섯 포기, 깍두기, 고추장, 곶감이 보인다. 웬 곶감인가 여쭸더니, “아 글쎄, 함양에는 감이 귀하다 쿠네. 사과는 많아도 감이 귀하다 캐서…”라고 하신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내와 나는 아홉시 조금 넘은 시간 함양으로 출발했다. 바깥 날씨는 차가웠다. 바람도 제법 불었다.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차 안은 춥지 않았다. 자동차 짐칸에 싣고 가는 어머니의 정성이 후끈후끈했다. 아픈 동생을 위한 언니의 마음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알 듯했다. 함양에는 일부러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서 드리고 돌아오기로 했다. 바쁘고 아픈데 우리밥까지 차려 달라고 하기엔 좀 그랬던 것이다.
안의면 소재지를 지나 거창 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우회전한다. 어머니는 “너거 외할매가 살았을 적에 딸네집에 다녀간다고 여기서 차에 내려갖고 걸어서 갔다더라”고 하신다. 차로도 5분 정도 걸리는데 늙은 할머니가 걸어서 갔다면, 보나마나 이것저것 들고 이고 지고 했을 터이니, 족히 30분은 걸릴 거리다. 그런 장면이 마치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떠오른다. 회상인지 상상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이모는 계시지 않았다. 이종사촌 동생이 댓바람으로 달려나가더니 한참 뒤 이모가 돌아왔다. 이모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것이다. 5년 전 아버지 항암 치료 때가 순간 떠올라 울컥했다. 말없이 가볍게 안아 드렸다. 얼굴은 밝았다. 눈빛도 좋았다. 모자를 쓰지 않았더라면 환자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머니는 여차저차하여 김치하고 이것저것 좀 챙겨왔다고 설명했다. 이모는 “아이고, 시장에서 집에까지 갖다 나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 낀데…”라며 오히려 언니인 어머니를 더 걱정한다. “환자라서 매운 고춧가루는 많이 안 넣었다. 맛은 없을 끼다”라는 어머니에게 “만다꼬, 만다꼬…”를 연발하시는 이모. 좀 쉬었다가 밥도 먹고 가라는 이모와 이종사촌 동생들을 두고 우리는 다시 진주로 향했다.
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숙제를 해결해서 속이 시원하시지예?”라고 여쭈니 “어-”라고 하신다. 어머니께 전화가 온다. 이모아재다. 목소리가 커서 다 들린다. “그리 와서 그렇게 가면 어쩌냐? 다시 돌아와라. 함양 수동 어디 식당에서 기다리면 달려가겠다. 아쉽게 그러면 안된다.” 이런 말씀들을 전화기 너머에서 하셨다. 어머니는 “고마 됐다. 벌써로 많이 와 버렸다. 그냥 간다. 다음에 또 보자.” 이런 말씀들을 변명으로 하셨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으나 시간은 어느덧 12시를 넘어가고 있어서 생초에 들러 어탕국수 한 그릇씩 먹었다. 진주로 돌아와서 어머니 집에서 뭐든 간단히 해 먹을 수도 있었으나 그냥 그렇게 했다. 후후 불어가면서 뜨거운 어탕칼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건더기를 좀 남기고 아내는 국물과 건더기를 좀 남기고 나는 말끔히 비웠다. 반찬도 짜고 어탕국수도 짰다. 밥값은 어머니가 내셨다. "너거는 차를 운전했으니까 밥값은 내가 내겠다"는 말씀에 몇 마디 거들다가 포기했다. 그러고 싶으신 걸 굳이 말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뜨거운 걸 먹은 뒤였으나 바깥바람은 여전히 찼다.
함양 이모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내가 보고 들은 것만 쓴 것이어서 겉껍데기일 뿐이다. 어머니와 이모들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형제애와 깊은 감정을 나는 알 수 없다.
(http://blog.daum.net/yiwoogi/13417550)
2017. 12. 26.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구영신 (0) | 2017.12.31 |
---|---|
어둡고 추운 가좌동에도 따뜻한 햇살이 (0) | 2017.12.28 |
동부시장, 자유시장 근처를 기웃거리다 (0) | 2017.12.20 |
미안합니다 (0) | 2017.12.13 |
진주 실비골목을 왔다 갔다 하다가 (0) | 2017.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