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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시사(時祀) 지내는 날

by 이우기, yiwoogi 2017. 12. 3.

학교 갔다 오자마자 가방을 마루에 집어던지고 조그만 보자기를 챙겨 가까운 야산으로 내달렸다.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가야만 하는 까닭도 없었건만 왜 그랬던 것일까. 헉헉대며 산으로 올라가면, 어른들은 바지게에 제물을 가득 담아 지고는 역시 끙끙대며 오르고 있다. 우리는 어른들 꽁무니를 하염없이 따라다녔다. 어느 무덤에 다다르면 시루떡, 절편, 인절미, 돼지고기, 나물, 사과, , 마른오징어 따위 제물을 진설해 놓고 절을 했다. 그 무덤이 누구 무덤인지 알 리 없는 우리는 딴전을 피우며 절차가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이리 오너라!”라는 소리가 들리면 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동작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줄을 섰다. 어른들은 생선, 돼지고기, , 사과 따위를 조금조금씩 잘라서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어쩌다 뒤쪽에 서게 된 날은 돼지고기 담긴 접시를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다. 뒤로 갈수록 고기 크기도 작아졌고 숫제 비곗덩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은 고기와 떡 등속은 이리저리 구분하고 나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한 보자기에 뭉뚱그려 묶었다. 우리들은 서로 마주보며 시시덕거리며 산을 내려왔다. 남의 시사 지내는 데 일부러 찾아가서 음식을 얻어오는 것이다. 그것은 저녁시간에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과 마주 앉아 한 점씩 귀하게 먹는 반찬이 되었고 아버지 술안주도 되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시사를 지내는 집안에서는 일부러 고기를 좀 넉넉하게 장만하였고 그렇게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곤 했다.

 

우리 집안의 시사도 좀 뻑적지근한 편이다. 대종중 시사에 가 보면 같은 항렬인데도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듯한 어른도 계시고, 새파랗게 나이 어린 사람도 아제라고 불러야 할 경우도 있다. 50명 남짓 모여 두 줄 석 줄로 늘어서서 절을 한다. 9, 8, 7대조까지 모신다. 절하는 속도가 다 달라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듯하다. 그 사람들의 이름과 촌수를 다 기억하는 총무가 회비를 걷고, 그 사람들 모두 한두 점씩 먹을 고기를 써느라 칼잡이는 바쁜 손을 놀린다.

 

한 해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좀 먼 친척들인지라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다. 얼굴도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른 듯하여 헷갈리기만 한다. 그래도 영판 낯선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 그것이 다 시사 같은 집안 행사 덕분이라고 여긴다. 2~3년에 한 번씩 회원 명단을 인쇄해 돌리고 그동안 모은 돈과 쓴 돈을 자잘하게 기록하여 설명하지만, 솔직히 귀에 쏙쏙 들어오진 않는다. 각 집안마다 장남이 있고 장남들끼리 먼저 회의를 하고 보고를 하기 때문에 의심할 것도 없고 궁금할 것도 사실은 없다. 어른들 하자는 대로 하면 더 편하고 더 따뜻하고 더 배부르고 더 기쁠 것이니까.

 

그렇게 대종중 시사가 끝나면 다시 나와 재종간이 모이는 집안의 시사에 참석한다. 자동차로 5분 거리만 이동하면 된다. 우리는 자그마한 산에 조그마한 제단을 차려 놓았다. 거기서는 제주 기준으로 6, 5, 4대조까지 모신다. 일반 제물은 한 번 차린 것을 갈음하고 대가 바뀔 때마다 술잔과 전어만 갈아 놓는다. 전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제관들은 한 자리에 서서 절만 하면 된다. 맏형이 읽는 유세차~” 하는 목소리는 초겨울 맑은 하늘을 청아하게 물들인다. 지저귀던 새들도 일순 조용해지는 듯하다. 수십년 내공이 묻어나는 독축 소리에 푹 빠져 있노라면 어느새 상향~!”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20여 년 전부터 항렬 같은 재종형제들이 한 집씩 돌아가며 제물을 준비한다. 음력 7월에 하는 벌초와 음력 10월에 하는 시사 음식의 소임을 맡는다. 형제가 열대여섯 명이니까 내 차례를 두 번만 지내면 거의 쉰 나이가 된다. 지지난해에 그 소임을 맡았는데 어떡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할까, 어떡하면 새롭고 신선한 음식을 대접할까 하는 생각에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만약 종손이 해마다 도맡아 제물을 준비하였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형제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조상의 음덕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껴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힘들고 귀찮은 일이긴 한데, 이러한 소임을 거의 15년 만에 한 번 하는 것이므로 웃으며 즐겁게 임한다.

 

우리 집안은 아직 번듯한 제각은 없다. 필요성을 느끼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를 해서 지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형편에 맞게 모여서 상황에 맞춰 절하고 음식 나눠 먹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이 산 저 산 옮아다니지 않고 한곳에서 3대의 조상에게 절할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벌초를 할 때도 느끼고 시사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이만한 정도면 만족이라고 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시사를 끝내고 음식을 차린다. 비나 바람을 피하려고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햇살이 무척 따사로웠으므로 그냥 잔디밭에 자리를 깐다. 돼지고기, 생선, , 탕국, 김치, 고추와 마늘, 쌈장, 소금 따위를 모둠모둠으로 펼쳐놓고 숟가락, 젓가락에 술잔까지 살뜰히 배정하고 나면 다들 주섬주섬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새로 무친 김치가 참 맛있다, 돼지고기는 왜 이렇게 크게 썰었나, 탕국이 뜨거우니 한그릇 더 먹어라, 떡도 먹고 수박도 썰어라는 말들이 웃음과 함께 오고가고 운전을 하지 않을 형제들은 소주나 맥주나 막걸리나 엥기는 대로 한잔씩들 한다. 왁자하게 떠들다가 조용하게 음미하다가 그렇게 조상의 품 안에서 행복함을 즐긴다.

 

 


다시 회비를 걷고 알릴 말씀을 전한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햇살은 어느새 서쪽으로 많이 걸어가 버렸다. 돌아갈 길이 먼 조카가 먼저 자리를 뜨고 큰형수는 음식을 일일이 나눠 봉지봉지 담는다. 누구 집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고 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게 어지간하다. 한두 해 해본 솜씨가 아님을 한눈에 알겠다.

 

요즘은 남의 집 시사 때 찾아와서 손 벌리는 아이는 없다.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행여 누가 시사 음식을 쥐어 주려고 해도 이딴 걸 왜 주느냐고 할 게 뻔하다. 세월이 바뀌었고 생각도 변한 탓이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고 아쉬울 게 없다. 그래도 우리는 제단 아래 사는 할아버지 댁에 한 쟁반 알뜰하게 챙겨 가져다 준다. 지근에서 떠들썩하게 시사를 지냈는데 입을 싹 닦는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주는 정과 받는 정이 따뜻한 봄날 같다.

 

이런 시사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생각해 본다. 한두 세대를 더 이어갈 수 있을까. 이어간다면 다행이겠지만, 다행이라 하더라도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제사를 지낼 것이다. 지금은 이 산 저 산 찾아다니며 절을 하지 않고 제단이나 제각 한 곳에서 절을 하는데, 한두 세대를 내려가면 도심 아파트에 모여서 고향 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있지 않을까. 무덤도 한곳에 모아 놓고 그것도 가족납골당으로 만들어 콘크리트로 덮어 씌우지 않을까. 그러면 벌초할 일도 없을 테니. 모든 것을 편의 위주로 바꾸고 후세대 위주로 전환하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시사나 벌초 또한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편리한 기계를 사용하고 날짜도 서로 더 편한 날짜로 요리조리 옮겨가면서 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라도 이런 전통이랄까 미풍양속이랄까 아무튼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행사가 이어져 나간다면 좋겠다. 사실은 조상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한다. 무덤 위치도 늘 헷갈린다. 하지만 이렇게 한 해에 두 번씩이라도 재종간 모이는 덕분에 서로 안부를 알게 된다. 어른들이 편찮으신지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게 된다.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고 즐거운 행사라고 본다.

 

 


2017.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