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 산비탈에 오도카니 앉은 우리 집
작은설날에 열일곱 식구가 다 모인다.
마당에선 돼지고기를 삶고 거실에선 파전을 굽는다.
어른들은 가오리회무침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논다.
드러누워 텔레비전 영화를 보기도 한다.
네 아들 가지고 온 선물 보따리 풀어놓고
나눠갖기도 하고 자랑도 좀 하고 그러다 또 웃는다.
아버지 어머니께 용돈 드리고 조카들 세뱃돈도 준다.
도서상품권을 고집하던 나도 현금으로 바꾸었다.
수육 삶고 써는 일, 나물 데칠 때 물 퍼주는 일은
해마다 내가 하는 일이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들 나란히 정리하는 일도
언제나 내 몫이다.
술취한 아버지는 나물이 짜다 달다 지청구를 하시고
어머니는 또 참견이냐며 맞대꾸를 하시고,
그러다 또 웃는다.
고스톱에서 내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이고
윷놀이판을 벌여 지붕이 날아가라 떠들고 논다.
오늘은 열여섯 식구가 모일 것이다.
기다란 밥상 맨윗자리에 앉을 사람도 큰형으로 바뀌었고
챙겨야 할 신발도 하나 줄었고 용돈도 줄어들었다.
기쁘고 흥겹고 즐거워 취하여야 할 술도
그냥 마시고 그냥 취할 것만 같다.
눈치를 살피고 지극정성으로 모셔야 할 아버지의 부재는
가슴 한 구석을 도려낸 것만큼이나 허전하고 허하다.
작은설날 본가로 향하는 마음에 설렘보다 그리움이,
한 겹 두 겹 쌓인다, 하염없이...
201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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