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게 직업인 나는 고민이 있다. 작다면 작지만 크다면 큰 고민이다. 바로 ‘및’ 때문이다. 내 눈에는 이 글자가 도무지 우리 글자로 안 보인다. 읽기도 어렵다. 나는 ‘및’을 되도록 안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잘 안 된다. 내가 직접 쓰는 글에는 안 쓰면 그만이지만, 다른 사람의 자료를 인용하여 글을 쓸 때 ‘및’을 그대로 두자니 눈에 거슬리고 하나하나 고치자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쓴 사람은 나름대로 쓴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고민이다. 고민이 깊어 병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및’은 아주 풍년이다. ‘특정환자, 알러지체질 및 질환치료 중이신 분’, ‘대학, 대학원 및 특수대학원’, ‘무슨무슨 법률시행령 제○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조’, ‘빈방 및 외출 시 소등’처럼 쓴다. 교과서에도, 잡지에도, 신문 기사에도, 법조문에도 넘쳐난다. 보기를 들자면 끝이 없다. ‘및’은 ‘와(과), 그리고, 또는’의 뜻으로 쓴다. 그냥 쉼표나 가운뎃점으로 갈음해도 좋을 듯한데 굳이 ‘및’이다.
‘및’이 내 눈에 우리 글자로 안 보이는 것은, 그냥 말을 할 때는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써놓은 글을 보고 읽을 때에만 쓰는 것 같다. 회의할 때, 술 마실 때, 밥상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할 때는 ‘및’을 쓰지 않는다. “특정환자 하고 알러지체질 하고 또 질환치료 중인 사람” 이렇게 말한다. “대학, 대학원, 그리고 특수대학원” 이렇게도 말한다. ‘및’이 없으면 오히려 말하기 쉽고 읽기 쉽다. 당연히 이해하기도 쉽다.
나는 ‘및병(病)’에 걸려 꽤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글과 말 사이에 끼어들었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한자 ‘미칠급(及)’에서 왔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미치다’에서 ‘및’이 왔다는 것이다. 及이 한문 문장에서 ‘와’의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及으로 쓰고 ‘와’의 뜻으로 읽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한문이나 일본글에서만 써야지 우리말과 글에 마구잡이로 섞어 써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떻게 고쳐 쓸 것인지도 많이 연구하고 실습했다. 이만큼 이야기하고 나면 나의 ‘및병’은 조금은 나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및’이 엄연한 우리말이고 우리글이라고 생각한다. ‘와, 그리고’ 따위와 조금 다른 뜻이라고 생각하며 쓴다. 글 쓸 때나 써놓은 글을 읽을 때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무엇보다,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올라 있다. 할 수 없이 나의 ‘및병’은 좀더 오래 갈 것 같다. 경남일보 2012.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