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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말씀, 여쭙다

by 이우기, yiwoogi 2014. 10. 9.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말을 배울 때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높임말이라고 한다. ‘압존법’이 어렵다는 말이다. 어떨 때 높임말을 쓰고 어떨 때 예삿말을 쓸 것인가 하는 게 어려운가 보다. 이 말은, 다른 나라에서는 높임말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말과 아주 다르다는 뜻이다.

높임말은 낱말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밥’이라고 하지 않고 ‘진지’라고 하는 것이 그 보기이다. ‘시’를 넣어 높임말을 만들기도 한다. ‘온다’라는 말보다 ‘오신다’라고 하면 상대방을 높이는 말이 된다. 중국글자말(한자말)이 높임말이 되기도 한다. ‘이빨’은 짐승에게 쓰고, ‘이’는 어린이에게 쓰고, ‘치아’는 어른에게 쓰는 식이다. 나는 중국글자말을 높임말로 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굳이 따따부따 따질 생각은 아직은 별로 없다. ‘아버지’보다 ‘부친’이 높임말이라는 데 대해 거부감이 크긴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가 한 자리에 있을 때 높임말을 가려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어요.”라고 하면 맞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진지를 드시고 계세요.”라고 말하면 야단맞는다. 또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진지 드시러 오라고 하십니다.”라고 하면 꾸지람을 듣는다.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십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올바르게 말하고 오히려 꾸지람 듣는 일도 있다. 여러 사람이 있을 때 높임과 낮춤의 기준은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다.

높임말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말씀’과 ‘여쭈다’가 그것이다. ‘말씀’은 상대방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처럼 쓴다. 그런데 ‘말씀’은 상대방에 대해 자기의 말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선생님,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처럼 쓴다. 그러니까 ‘말씀’은 높임말이기도 하고 낮춤말이기도 한 것 같다.

‘여쭈다’도 비슷하다. ‘무엇을 알아내기 위하여 상대의 대답이나 설명을 요구하여 말하다’는 말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여쭈어 보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도 쓴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여쭈어 보셨습니다.” 주로 ‘물어보았다’라고 하지만 ‘여쭈어 보았다’라고도 쓴다. 이게 잘못된 게 아니라면(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은 아주 조금 든다), ‘여쭈다’ 역시 높임말도 되고 낮춤말도 되는 것이다.

이 두 낱말의 이중성이랄까 양면성이랄까, 아무튼 이에 대해 오래 전부터 ‘그것 참 신기하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았다. 과연 ‘말씀’과 ‘여쭈다’는 이중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높임말도 되고 낮춤말도 되는 낱말 두 개는 ‘말씀’과 ‘여쭈다’이다. 혹시 다르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아니면, 전문가에게 여쭈어 보든지 해야겠다.


201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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