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줄여 쓰려는 건 인간 본능일 것이다. 경상대학교를 '경대'라 하고 학교식당을 '학식'이라고 한다. 대리출석을 '대출'이라고 하면 은행에서 돈 빌리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강의를 '인강'이라 하고 스타벅스를 '스벅'이라고 하는 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서 배운다.
아들이 군대 갔다. 전화는 완전 두절됐으니 편지 말고는 달리 안부 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주소는 소대장이 알려주었다. 손으로 직접 쓰기 귀찮아서 컴퓨터로 인쇄하여 서명을 했다. 우체국 가서 우표값 내고 부쳤다.
며칠 뒤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들의 모임(카페)에 들어갔더니 '인편'이라는 말이 보인다. 아, 편지를 써서 인편으로 보내면 될걸, 굳이 우체국까지 갔다 왔구나. 어리석은 내 머리를 스스로 책망했다. 그런데 편지를 전해줄 그 사람(인편)은 어디 있지? 누구지?
알고 보니 '인편'은 '인터넷 편지'의 준말이다. 공군교육사령부 기본군사훈련단 누리집에서 아들 이름과 생일을 입력하니 편지 쓰는 게시판이 열린다. 오늘 써서 입력해 놓으면 내일 아침에 출력하여 전달해 준단다. 세상 참 좋아졌다.
인편에도 제한 사항이 있다. 부모만 쓸 수 있다. 2000자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하루에 쓸 수 있는 편지가 100통 이내라고 한다. 하루에 100통이나 쓸 말이 있나. 하루에 100통이나 쓸 사람이 있나. 만약 50여 명의 한 소대 부모 100여 명이 100통씩 써대면 소대장이 머리가 빙빙 돌지 않겠나. 참 얄궂은 세상이다. 나는 2-3일에 한통이라도 제대로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인편: 오거나 가는 사람의 편
**인편: 인터넷 편지의 줄임말
2020. 9. 7.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