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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가드닝

by 이우기, yiwoogi 2020. 4. 29.

2020년 4월 29일 한국일보 기사

누구나 한번쯤은 꿈꾼다. 자기만의 집을 짓고 마당에 큰 개를 키우며 한 구석엔 텃밭을 만든다. 텃밭에는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따위를 키운다. 마당은 밭이면서 정원이다. 개나리, 사철나무는 울타리 삼아 심고 진달래는 돌담 사이에 심고 수국도 나란히 심으면 좋다. 채송화, 봉선화, 꽃잔디, 상사화 같은 꽃도 군데군데 심어 놓으면 철따라 꽃을 볼 수 있다. 키 큰 목련은 봄을 즐기기 위함이요 오동나무까지 심는다면 그건 더 먼 미래를 위한 투자일 것이다. 정원 가꾸는 재미는 자식 키우는 재미와 비슷할 것이다. 아니, 자식이 속 썩일 때 마음 다스리기로는 이만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아파트 발코니도 작은 정원이 된다. 너비 1m 남짓, 길이 10m 남짓 되는 발코니는 온갖 잡동사니를 쟁여 놓는 창고가 된다. 빨래 건조대를 비롯해 물을 묻히기 쉬운 것들이 공간을 차지한다. 그러고도 남은 공간에는 식물들이 차지한다. 주로 난을 키운다. 난은 넓은 공간을 뺏는 것도 아니고 한 해에 한두 번은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꽃을 피운다. 요즘은 다육식물을 많이 키운다.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과 빛깔이 각양각색이다. 관리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발코니가 작은 정원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발코니 또는 일반 주택의 거실을 정원처럼 꾸미고 가꾸는 것을 ‘홈가드닝’이라고들 한다. ‘홈’은 ‘집’이다. ‘건물’을 가리키기보다는 ‘삶’을 의미한다고 해야겠지. 영어이긴 하지만 비교적 쉬운 말이다. ‘가드닝(gardening)’은 무슨 뜻일까. 어떤 사람은 대번에 알아보겠지만 어떤 사람은 한참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원예’라는 말이다. 정원을 뜻하는 가든(garden)에서 파생된 듯하다. 가드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발 디딜 곳을 확보하기 위해 식물 집단을 없애기’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모순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국토가 워낙 좁은 우리나라에서 그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국민 절반 이상은 성냥갑 같은 좁은 아파트에서 산다. 아파트에서도 푸른 초원을 가까이 두고 싶은 원초적 욕망을 충족하고 싶어한다. ‘홈가드닝’은 인간 본능의 발현이라고 할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가드닝’을 ‘생활원예’라고 바꿔 쓰라고 한다. ‘홈가드닝’은 따로 설명하지 않는데, ‘홈가드닝’도 ‘생활원예’라고 해도 될 것이다. 집에서 손쉽고 편하게 하는 원예라는 뜻이니까 그게 그것이다. 들머리사이트 ‘다음’의 사전을 찾아보면 생활원예를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원예 작물을 생산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난초나 다육식물을 기르는 일과 ‘원예 작물을 생산하는 일’은 조금 달라 보인다. 따지고 보면 그게 그것이다.

 

‘생활원예’라고 해도 되고 ‘가정원예’라고 해도 되겠다. 생활원예는 판매가 목적이 아닌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가깝다면, 가정원예는 작물보다는 관상용 화초를 키우는 것에 가깝다. 그런 느낌이 있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니 집안원예라고 하면 어떨까. 홈가드닝이라는 서양말보다는 생활원예, 가정원예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면 좋겠다. 홈가드닝이라는 말을 하다 보면 이 생활원예, 가정원예가 서양식 생활방식을 따라하는 것만 같다. 서양식 생활방식을 곧바로 따라하는 것이기도 하고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기도 할 것이다. ‘원예’라는 말에 일본 냄새가 물씬 난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말을 애써 외면하면서 낯선 서양말을 가져다 쓸 까닭은 없다고 본다. 홈가드닝도 계속 써 버릇하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익숙해질 것이고 외국어에서 외래어로 소속이 바뀔 것이다. 나는 그런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것만 해도 멀미가 날 지경이니까.

 

2020. 4. 29.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