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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잠 못 드는 밤

by 이우기, yiwoogi 2016. 11. 18.



커피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음료이다. 길거리에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카페베네, 엔젤리너스, 스타벅스, 띠아모, 커피플라워, 더웨이닝,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같은 커피전문집이 지천에 늘렸다. 대강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이 정도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들 무엇을 하는지 즐겁고 기쁜 표정들이 넘쳐난다. 젊은이들은 아예 두어 시간 씩 죽치고 앉아 숙제도 하고 토론회도 연단다. 이 커피집들 가운데 몇몇은 지역의 어느 일꾼이 일으켜 세운 것이고 나머지는 죄다 서울에 사는 모모한 인사가 전국에 퍼뜨려 놓은 이른바 체인점이다. 프랜차이즈라고도 한다. 외국것도 있다.

 

내 기억 속 커피는 두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나는 커피 자동판매기이다. 줄여서 자판기라고 했다. 대학 시절이던 80년대 중후반, 한 잔에 100원 하는 커피 자판기가 대학 교정 곳곳에 서 있었다(100원보다 더 쌌던가). 커피맛도 모르면서 늘상 그 주변에 둘러서서 한 잔씩들 하고는 했다. 커피 자판기 옆에는 콜라나 사이다를 마실 수 있는 음료수 자판기도 있었다. 다 마신 빈 종이잔을 공처럼 차면서 놀았다. 그때 마신 커피를 새마을커피라고 불렀다. 새마을운동의 성공으로 농촌이 좀 발전하자 마을마다 다방이 생겨났고 김 양, 박 양, 최 양 들이 타주던 커피맛과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다. 주로 커피 두 숟갈 , 크림 두 숟갈, 설탕 한 숟갈 이런 식으로 섞어 마셨다.

 

커피와 관련하여 기억나는 다른 그림 하나는 바로 다방, 커피숍이라는 것이다. 진주 칠암동 경상대 의과대학 정문 앞에는 이삭다방이 있었다(‘이삭커피숍이었던가?). 한쪽 구석에는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이 있는데 그 안에는 머리를 제법 멋들어지게 기른 젊은이 하나가 항상 앉아 있었다. 우리는 듣고 싶은 음악을 종이 쪼가리에 적어서 작은 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비틀즈, 사이먼과 가펑클, 아바 같은 외국사람 노래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한참 뒤 내가 신청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괜스레 들뜨고는 했다. 그런 데서 미팅을 하는 남녀들은 작은 사랑을 크게 이뤄나가고들 있는지... 중앙로터리 옆 땅값 비싸 보이는 곳에는 가나커피숍전원다방이 마주보고 있었다. 옛 시청 앞에는 화랑다방이 있었다. 진주교 입구 농협 지하에는 곰다방이 있었다. 대학생들의 약속장소 1번지였다. 졸업을 하여 먼 곳으로 직장을 얻어 간 이들이 한 해에 한두 번씩 진주에서 모이곤 하는데 이런 다방들이 그 장소가 되어 주었다.

 

이런 다방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하나둘 사라졌다. 앞서 말한 영어짜리 커피전문점들의 공습을 버텨내지 못한 탓이다. 우리들의 입맛이 그 사이에 새마을커피에서 원두커피로 옮아간 것이다. 식은 밥 먹은 뒤 숭늉 마시듯 퍼 마시던 커피에서 고급스럽게 잘 볶은 원두를 직접 내려 먹는 원두의 시대로 옮아갔다. 미국의 스타벅스가 진주 같은 지방도시에도 서넛씩 생겨나는 틈을 타 국산 상표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이들도 많이 늘어났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야 그게 그건가 보다하지만, 커피의 맛과 향, 그 매력에 매료된 이들은 아주 환장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쪽이다.

 

커피를 한 잔 마신 날은 저녁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커피에 각성제가 들어 있는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려면 일부러 오후에 커피를 한 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벽 두세 시까지 머릿속이 말똥말똥하다면 그건 형벌에 가깝다. 잠이 들었는가 싶다가 금세 깨고 아예 깨어 있고자 하면 졸음이 쏟아진다. 잠 속에서 꿈을 꾼 것인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를 비몽사몽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전전반측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사전에 따르면, 커피는 커피나무의 씨(커피콩)를 볶아 가루로 낸 것을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 또는 증기로 우려내어 마시는, 쓴맛과 신맛이 나는 음료이다. 커피콩은 주로 적도지방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의 70여 나라에서 재배되는 커피나무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모두 수입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커피와 관련한 말들은 대부분 외국어이다. 기껏 다방이라는 말만 우리말(한자말이긴 하지만)인 셈이다.

 


원두커피를 더욱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 또는 사무실에 커피 볶는 기계를 사 놓고 일삼아 커피를 볶고 추출하고 물에 타 먹는다. 그 고상한 취미를 나는 따라갈 수 없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배울 게 많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비싼 기계를 사는 것에서부터 스스로 커피를 볶는 일, 사람을 초대하여 한잔씩 나눠주는 정성은 분명 배울 점이다. 대학생들도 밥 먹은 뒤 커피집에 들러 한 잔씩 사 들고는 교정을 여유있게 거닌다. 그 순간 커피는 그들에게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 문제는 없다. 간혹 그들 중에도 그 잔을 공으로 삼아 축구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딱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을 빼고는 나는 현재의 커피문화에 대하여 시비 걸고 싶은 생각이 없다. 원두커피 볶아 먹는 일을 화제로 이야기하는데 로스팅’, ‘블렌딩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예민한 나의 촉수가 벌떡 일어섰다. 들은 풍월이 있어서 로스팅이라는 말은 볶는다라는 뜻인 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로스팅은 음식을 오븐 등에 넣어 150이상의 높은 건열을 사용해 수분을 더하지 않고 가열하는 조리 방법이다. 즉 볶는 것이다. 로스팅하는 기계는 로스팅기라고 한다. 블렌딩은 무엇일까. 블렌딩(blending)은 혼합, 혼성, 융합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커피를 만들어 먹는 과정에서 무엇과 무엇을 혼합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섞는 과정이 있나 보다.

 

참고로 다음백과에서 로스팅(roasting)에 대하여 설명해 놓은 것을 옮겨 본다. “생두는 볶기 전에는 아무런 맛도 향도 없다. 하지만 불과 만나면 원두가 되고, 그 원두를 갈아 물과 만나면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로 만들어진다. 생두를 불에 볶는 과정이 바로 로스팅이다. 생두는 1500가지가 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로스팅을 통해서 700여 가지가 표출된다.”

 

커피가 외국에서 들어왔으니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낱말이 외국어인 것은 어쩔 수 없겠다. 그렇지만 우리말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말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 것이다. 로스팅은 볶기’, 블렌딩은 섞기라고 하면 안될까 싶은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커피 향이 달라지거나 맛이 변하는 것은 아닐 것 아닌가. 그것 말고도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커피 마니아 가운데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이 나타나 이런 일을 좀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 긴긴 생각들은 주로 커피 마시고 잠 못 드는 깊은 밤에 하게 된다.

 

2016. 11. 18.


사진은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윤성민 선생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