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가 나린다. 는개라고 할까. 한의원에 간다. 올해 2월부터 평균 1주일에 두어 번 간다. 젊은 한의사가 말한다. “비도 그치는 듯한데 석갑산에 안 가시느냐?”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인다. 등산화 신고 우산 들고 모자 쓰고 집을 나선다. 라디오 들으면서 산을 오른다. 사람이 적다. 간혹 중년 부부들이 내려온다. 사위는 조금 뽀얗다. 아카시아꽃은 빗방울을 머금었고 앵두는 흠뻑 젖었다. 12시를 넘으니 배가 고프다. 보통 때보다 30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허기가 진다. 머릿속에 막걸리와 국수가 둥둥 떠다닌다.
평거동 '어울림'이라는 데 간다. 문을 여니 할머니 한 분이 돌아보며 “문을 좀 열어놓으소!”란다. 머리가 햐얗다. 92년 돌아가신 할무이와 닮았다. 둘러보니 빈 자리가 두세 군데 있었지만 할머니와 마주앉는다. 막걸리와 국수를 시킨다. 야릿한 국수 비린내가 가득하다. 은쟁반에 반찬과 막걸리가 나온다. 할머니더러 “한잔하시렵니까?” 여쭈니 “술은 못해!”라고 손사레친다. 혼자 마신다. 이윽고 할머니 국수가 나왔다. 내 국수도 나온다. 할머니 국수와 내 먹은 것을 한꺼번에 계산해 둔다. 1만 1000원이다. 할머니는 눈치채지 못한다. 배는 터지려고 한다.
근처 ‘진주문고’에 간다. 목적은 두 가지다. ‘송강식당’ 주방장이 소개하는 ‘단골의 서재’를 봐야했고, 김훤주 기자가 낸 <경남의 숨은 매력> 사야했다. 단골의 서재에는 아홉 권을 소개해 놨다. 네 권은 집에 있거나 이미 읽은 것이다. 나머지 가운데 한 권을 고른다. 석갑산 갔다 왔으니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을 집는다. <경남의 숨은 매력>은 직원에게 물어보고서야 위치를 찾는다. 두 권을 계산하고 진주문고를 나선다. 3만 3000원이다. 기분이 참 좋다.
한의원 간 것도 그렇고 석갑산 오른 것도 그렇고, 모든 게 잘 맞아돌아간다. 이제 오후에 낮잠 좀 자고 창원으로 조문 갈 일만 남았다. 뜻밖에 주어진 공휴일 하루가 알차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흐리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아직 배는 부르다.
2016.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