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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을 보며

by 이우기, yiwoogi 2016. 1. 26.

아들이 고등학교에 간다. 아직 중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는데, 어제 배정받은 고등학교 임시소집에 가서 입학절차에 필요한 여러 가지 안내글 들을 갖고 왔다. 입학금수업료교과서 값 등 50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21일까지 내라 하고, 반 편성을 위한 영어수학 시험 날짜도 알려준다. 인문계열로 갈 것인지 자연계열로 갈 것인지 정하여 알려달라고 한다. 교복과 체육복은 홈페이지 안내를 보고 사 입으라 하고 입학식 때 머리모양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가르친다. 벌써 고등학생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긴장감이 몰려온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고등학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생긴다. 예닐곱 장 되는 서류들을 넘겨보면서 묘한 생각에 빠져든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것은 초등학생이 중학생 되는 것과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고등학교 3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상당 부분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 먼저 그게 무섭고 걱정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추위와 싸워야 하고 더위를 이겨야 하고 때로는 배고픔과 졸음을 견디며 3년을 보내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곁의 친구들도 경쟁상대로 여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갈등일 것인데, 우리 아들은 그런 것들을 스스로 극복할 만큼 내적으로 성숙해 있을까. 부모의 기대치에 대한 부담감도 클 텐데. 장차 무엇이 될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판단하고 실천할 만큼 주도면밀한 면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1983년부터 3년 동안 고등학생 수험생이던 내가 겪은 것보다 어쩌면 훨씬 심한 고독과 어려움을 이겨내어야 하는 아들들에게, 30년 넘는 세월 동안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과 시험으로 유지되는 세상을 물려주게 된 것은 미안함이다. 나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 때 시험을 치러 200점 만점에 커트라인에 턱걸이하여 인문계 고등학교에 합격했는데, 아들은 그런 과정 없이 내신만으로 무사히 합격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침 6시에 밥 먹고 스쿨버스 타고 등교하면 도시락 2개 까먹고 밤 11시에 귀가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보다야 조금이라도 나은 게 있을 것으로 믿어도 될까. 학교급식 덕분에 도시락 두 개 들고 다니는 것은 면하였으니.

 

자녀가 대학 입학에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어머니의 정보력, 이렇게 셋이 필요하다고 우스개로 말하곤 했는데, 그래서 중학교 때까진 스스로 무관심하려고 했는데, 이제 정말 그래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별달리 정보를 얻을 곳도 없이 고등학교 선생님만 믿고 따라야 할 처지이지만, 아들을 위하여,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고등학생 학부모란 다들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을 터인데, 나는 많은 학부모들의 평균치에 다다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이라 힘들 것이고, 하나뿐인 자식이라 올바르게 판단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가장 먼저 건강할 수 있도록 신경써줘야겠다. 잘 먹고 잘 잘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부모도 이런저런 판단을 하겠지만 본인의 판단을 최대한 믿고 존중해야겠다. 이과를 가든 문과를 가든,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하든 학원을 가든. 그러고 보니 돈도 아껴야겠다. 등록금교과서급식비교재비용돈 들을 제대로 주려면, 더 벌기는 쉽지 않으니 쓰임새를 줄일 수밖에. 술 취하여 들어가더라도 이전보다는 좀더 조심하고 이참에 술도 더 줄여야겠지. 그렇더라도 이런 결심을 드러내놓고 표 나게 하지 말고 짐짓 모르는 척, 알게 모르게 서서히 바꿔나가는 게 맞겠지. 그나저나 스마트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게 당면한 고민이다. 2년 넘게 쓴 것을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아우성인데,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니. 초보 고딩 초보 아버지의 고민은 한둘이 아니다.

 

2016.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