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사람을 안다는 게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임종국상’ 학술상 받은 친일반민족진상위 김경현 조사관 | |
“친일문제는 과거사 아닌 현재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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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
김경현(39) 조사관은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 위암 장지연의 친일 활동을 주장해 유족들로부터 고소를 당했으나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역사정의 실현에 헌신한 개인 또는 단체’에 주는 제1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가 된 것이다. ‘임종국상’은
<친일문학론>을 저술하는 등 한평생을 친일 연구에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이 두 가지 경사를 연관시켜주는 ‘고리’는 그가 10여년의 작업 끝에 내놓은 저서 <일제강점기 인명록1-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다. 올 3·1절을 맞아 펴낸 이 책은 일제시대 진주지역 일대에서 부역한 식민통치기구 관리와 관변단체에 참여한 지역 유지 등 3400여명의 행적과 해방 뒤 경력을 700여 쪽에 걸쳐 다루고 있다.
진주 친일경력 3400명 밝혀 명성
“대학을 졸업하고 <진주신문>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물 문제를 둘러싸고 폭행 사건이 일어났는데, 사건을 취재하다보니 단순한 물 분쟁 이면에 과거 지주와 소작농 관계였던 양쪽 집안의 갈등, 해방 뒤 농지개혁, 일제시대 토지정책까지 연관이 돼있더군요. 친일 문제가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의 책 속에 담긴 수천 명 친일인사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은 위암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구한말 언론인 위암이 주필로 재직하던 <경남일보>가 1910년을 전후해 ‘이토 히로부미 추모시’ ‘천장절(일왕의 생일) 기념 경축행사’ ‘일왕 찬양한시’ 등을 게재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 바람에 그는 지난 5월 유족들로부터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1916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위암이 기고한 ‘하세가와 신임 총독 부임 축하시’를 추가로 공개해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검찰도 지난달 그에게 무혐의 결정을 알려왔다.
‘장지연 친일 논란’으로 우리사회 친일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 그는, 연구와 저술활동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두달 전부터는 진주를 떠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 영남권 담당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식구들과 떨어져 서울로 올라와 혼자 생활하게 된 그는 “대학 입학직후 미팅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뒤 ‘돈 안 되는 일’임에도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준 아내(초등학교 교사)에게 가장 고맙다”며 “임종국상 수상을 계기로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바로 세우기 작업에 더 큰 사명감으로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진주지역 친일사 전문가’로 알려지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그에 대해 오해하는 점도 여럿이다. “진주 토박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아닙니다. 20년 동안 전라도 광주에서 살다가 1986년 대학(경상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진주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학과 나왔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데, 전공은 사회학입니다. 원래 역사에는 아마추어지만 관심 있는 분야 자료 모으고 공부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차피 사학자만 친일 역사 연구하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나는 김경현 이 사람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러울 때가 있단다. 특별한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저그런 관계도 아니지만. 그가 명석면사를 쓸 때 나는 그의 글을 교정해준 적이 있단다. 물론 그가 진주신문 기자로 일할 땐 기사를 읽기도 했고 또 진주이야기 백선을 펴냈을 때도 읽어보곤 했지. 그런 그가 '일'을 저지른 것이란다. 이런 기사는 일의 앞뒤 사정을 잘 알아야할 것이므로 지금 당장 어쩌고저쩌고 하긴 그렇지만, 아무튼 훌륭한 분이다. 다을이가 역사를 알 때쯤이면 분명 이런 분이 크게 대접받는 날이 돼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