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40) 기사 문장 다르게 써 보기 연습
231.
◐ 뉴스 진행자가 윽박을 지르며 진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품위유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2023. 1. 3. 20:16)
한 방송국 뉴스 진행자가 출연자를 호통치면서 진행하는가 보다. 보는 사람은 속 시원하게 느낄 수도 있다. 출연자가 어떤 사태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불쾌하게 생각한 듯하다.
‘윽박을 지르며’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윽박’은 ‘남을 심하게 을러대고 짓눌러 기를 꺾음’이라는 뜻의 명사이다. ‘의사를 묻는 게 아니고 반대하는 놈이 있기만 있으면 때려죽이겠다는 윽박이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보기글은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가져옴)라고 쓴다. 이 말은 ‘-지르다’를 붙여 ‘윽박지르다’ 꼴로 동사로 곧잘 쓴다.
기사에서는 ‘윽박지르다’를 인수분해하여 ‘윽박을 지르다’라고 썼다. 참 낯설다. ‘호통치다’를 ‘호통을 치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나저나 이 뉴스 진행자에게는 어떤 벌을 줄까.
232.
◐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순간 참아 왔던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다. (2023. 1. 4. 06:41)
미국으로 이민하여 시민권을 얻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2022년에 102만여 명이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구나.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하고,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 때문에 그동안 힘들어했다고 한다.
기사 문장에서 ‘참아 왔던’의 위치가 고민거리다. 기사대로라면 ‘참아 왔던’은 ‘곳곳에서’를 꾸민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이 어색하다. ‘참아 왔던’을 ‘눈물이’ 앞으로 옮겨본다. ‘참아 왔던 눈물이 터졌다’라고 하니 어색하지 않다. 꾸미는 말은 되도록 꾸밈을 받는 말 앞에 갖다 놓으면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오해가 없어지는 일도 종종 생긴다.
233.
◐ 지난해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방문객이 120만명을 넘어 특구 지정 이후 최대 기록을 세웠다. (2023. 1. 4. 14:12)
인기 연속극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울산 고래문화특구에 관광객이 몰렸다. 한 해에 120만 명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포경이 금지되기 전 국내 최대의 포경 항구로 유명한 장생포 이야기다.
‘기록’은 크기일까, 높이일까. 크기라면 ‘최대’가 맞다. 높이라면 ‘최고’라고 해야 한다. 이 기사에서 관광객 수는 ‘수량’이다. 그렇다면 ‘최다’라고 해야 한다. 어떤 게 맞을까. ‘최고’와 ‘최다’는 덜 어색하고 ‘최대’는 많이 어색하다.
234.
◐ 유럽에서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해 가스 수요가 줄면서 당초 우려했던 유럽의 에너지 대란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3. 1. 5. 07:5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으로 연결되는 천연가스관을 잠갔다. 겨울에 날씨가 더 추워지면 유럽 사람들이 살려달라 아우성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유럽은 겨울답지 않게 이상하게 따뜻하다. 유럽의 에너지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다룬 기사다.
‘당초’(當初)는 한자어로서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이라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애초’가 있다. ‘애’는 우리말이고 ‘초’는 한자다. 우리말+한자 구조다. 뜻은 ‘맨 처음’이다. 시초, 궐초라는 말도 있다. 시초는 더러 쓰는데 궐초는 낯설다.
이 기사에서 골똘히 생각해 볼 것은 다른 데 있다.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를 어떤 사람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라고 쓴다. 그게 그것 같은데 느낌은 좀 다르다. 각각의 언어습관에 따라 다르게 쓸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하는 게 재미있다. 결론은 없다.
235.
◐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면 서빙 담당자들이 빈 그릇을 들어 일사불란하게 설거지 담당자에 전달했다. (2023. 1. 5. 06:01)
서울 탑골 공원 근처에 노인무료급식소가 있다. 하루 170여 명이 80m 정도 줄을 선다. 번호표를 주는데 250번까지 밥을 먹는단다. 거기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이다.
‘서빙 담당자’에서 ‘서빙’이란 무엇일까. 탑골 공원에 찾아온 분들에게 밥을 지어서 차려드리고 설거지까지 하는 전 과정이 서빙이다. 기사에서는 직접 밥을 밥상에 갖다 나르고 밥 먹은 뒤 치우는 일을 서빙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그건 그렇고.
‘담당자에’는 잘못된 표현이다. 유정물에는 ‘-에게’를, 무정물에는 ‘-에’를 쓴다. 여기서 담당자는 사람, 곧 유정물이므로 ‘-에게’를 써야 한다.
236.
◐ 부산 울산에 건조 경보가, 경남(창원 양산 김해 밀양 창녕 산청 함양 합천 사천 거제 통영)에 건조주의보가 발효돼 대부분 지역은 내일 비가 오기 전까지 대기가 매우 건조하다. (2023. 1. 5. 07:27)
날씨 알림 기사에서 흔히 보는 문장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다. 건조주의보가 발효되어 대기가 건조하다고 썼다. 거꾸로 되었다. 대기가 매우 건조하므로 건조주의보를 발효하는 것 아닌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다. 날씨 알림 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쓰는 일이 잦다.
237.
◐ 9일 오전 부산진구 한 오피스텔 주차타워에서 불이 나 연기로 뒤덮혀 있다. (2023. 1. 9. 10:04)
주차 건물에 불이 났다. 사진을 보니 꽤 높은 건물이다. 얼마나 많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을까. 혹시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요즘 우리 나날살이에서 ‘오피스텔’이라는 말은 익숙하다. 오피스와 호텔의 합성어로 업무를 주로 하되 일부 숙식을 할 수 있는 건축물을 가리킨다. ‘주차타워’라는 말도 익숙하다. ‘주차빌딩’이라고도 쓴다. ‘주차건물’이라는 말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세상이다.
‘뒤덮혀’는 ‘뒤덮여’라고 써야 한다. ‘뒤덮다→뒤덮이다→뒤덮여’로 이해하면 된다. ‘높다→높이다→높여’도 똑같다. ‘덮다, 뒤덮다, 높다’는 ‘ㅍ’ 받침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함께 기억하면 좋다.
238.
◐ 전기차 업계 1위 테슬라가 기습 가격 인하, 차량 화재 등 각종 이슈에 불거지며 새해 들어서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23. 1. 11. 12:18)
전기차와 관련한 소식에 눈길이 간다. 그중에서도 전기차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는 남 일 같지 않다. 테슬라가 이런저런 일로 입도마에 올랐다. 특히 전기차 불 난 이야기는 테슬라만의 이야기도 아닌데 유독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전기차 운전자로서 이래저래 심란하다.
‘이슈에 불거지며’라는 말은 한 눈으로 흘겨봐도 잘못된 줄 알겠다. ‘불거지다’가 ‘-이/가’를 부르는 서술어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는 ‘이슈가 불거지며’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테슬라가’와 ‘논란이’가 한 문장에 있으니 ‘이슈가’라고 쓰기 어색했을 듯하다. 문장에서 서로 임자 노릇을 하겠다고 다투는 꼴 아닌가.
‘이슈에’를 살려 쓸 수도 있다. 그러자면 ‘불거지며’를 ‘노출되며’로 바꾸면 된다. 불거진 것이나 노출된 것 모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된 상황을 뜻한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 ‘이슈’라는 말 때문이다. 이슈는 ‘서로 다투는 중심이 되는 점. 쟁점’이라는 말이다. 이 기사에서는 ‘쟁점’이라고 하거나 그냥 ‘문제’라고 하면 되겠다.
239.
◐ NH투자증권은 지난 6~7일 정영채 사장을 비롯한 임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3년 임원 워크샵’를 경기도 고양시 일산 NH인재원에서 개최했다고 8일 밝혔다. (2023. 01. 08. 13:09:41)
연말연시에 구성원이 참석하는 연수회를 여는 데가 많다. 정부 조직도 그렇고 민간 회사도 그렇다. 시민 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사를 할 때 이름을 ‘워크숍’이라고 곧잘 붙인다. ‘세미나’, ‘콘퍼런스’라는 행사도 많이 한다.
‘워크숍’을 ‘워크샵’이라고 쓰는 데가 많다. ‘워크샾’이라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어야 한다. ‘공동 연수, 공동 수련’ 따위로 순화하여 쓸 수 있는 영어 ‘workshop’은 ‘워크숍’이라고 적어야 한다. ‘-shop’는 모두 ‘-숍’이다. 텔레비전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샵(미용실) 다녀왔다.”라는 말을 하던데 이런 말의 영향 때문인지 ‘-샵’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 받침은 ‘ㄱ, ㄴ, ㄹ, ㅁ, ㅂ, ㅅ, ㅇ’ 이렇게 일곱 가지만 허용한다. ‘ㄷ’은 ‘ㅅ’이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그 외 자음은 받침으로 쓰지 않는다.
‘비롯한’은 뒷말 ‘임원’을 꾸민다. 이 문장에서는 ‘정영채 사장을 비롯하다’가 ‘임원’을 꾸밀 필요가 없다. 사장을 포함한다는 뜻이므로 ‘비롯해’라고 하면 더 자연스럽다. ‘50여명’은 ‘50여 명’으로 띄어 써야 한다.
240.
◐ A씨는 안방에서 이불에 덮여 있는 채로 사망한 상태였다. (2023. 1. 12. 07:49)
79살 여성이 사망했다. 경찰은 2년 전에 이미 사망했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딸이 있는데, 2020년 8월경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메모를 썼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시신을 안방에 두고 2년 동안 한 집에서 살았다는 말일까. 엽기적이란 말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불에 덮여 있는 채로 사망한 상태였다’라는 문장은 언뜻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없다.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사망한 채 이불에 덮여 있었다’ 훨씬 간단명료하고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