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에게 일어난 이야기
2024년 나에게 일어난 이야기
2024년을 돌아본다. 많은 일이 일어났다. 나에게도 그렇고 직장에도 그렇고 나라에도 그러하다. 나랏일은 입에 올리기 민망하다. 해마다 이맘때 한 해를 돌아보며 잘못한 일을 반성하고 내년에는 더 잘하리라 다짐해 왔다. 돌아보면 해마다 아쉬움과 함께 반성만 늘었을 뿐 스스로 대견하거나 뿌듯한 일은 별로 없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한 것만 같다.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직장동료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미안함만 늘어난다. 2024년을 돌아본다. 사실 며칠 동안 올해 나에게 일어난 일을 골똘하게 생각했다. 기록에 남길 만한 일이 몇 가지 없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래도 적어 놓는다.
1. 자동차를 바꾸었다
1997년 아벨라를 샀었다. 10년을 조금 채우지 못하고 팔았다. 쎄라토를 샀다. 2000만 원쯤 준 것 같다. 15년 탔을 때 차를 바꾸자 마음먹었다. 2022년 봄이었다. 어찌어찌 하여 전기차를 샀다. 니로플러스다. 전기차는 좋았다. 안 좋은 점도 있었다. 전기차를 살 때 쎄라토를 팔아야 했다. 그러나 팔지 않았다. 어쩌면 집에 자동차 2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23년 9월 아내가 남해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전기차는 아내 차지가 되었다. 쎄라토를 팔지 않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쎄라토를 17년 탔을 즈음인 올 4월경 차를 바꿀 마음이 생겼다. 자꾸 비싼 차가 눈에 띄었다. 형제 중에 기아자동차 직원이 있어서 기아자동차만 보았다. 하이브리드가 가성비에서 좋다고 하였으나 찻값이 비쌌다. 결국 레이를 사기로 했다. 계약한 날은 7월 8일이고 차를 받은 날은 11월 21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앞바퀴 2개를 갈아 끼웠다. 배터리도 교체했다. 그 상태로 먼 길을 가거나 고속도로에 올랐다간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레이 가운데 가장 사양이 높은 것이고 옵션이라고 넣어주는 건 죄다 넣었다. 이것저것 합하여 2100만 원 들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으고 대출까지 내었다. 차는 마음에 든다. 경차인지라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는 반면 경차라서 얻는 혜택도 많다. 무거운 짐을 싣거나 많은 사람을 태우거나 언덕길을 오를 때 힘들다. 고속도로에서 120km로 달려봤는데 알피엠(RPM)이 4000쯤 나온다. 그래도 좋다. 여유 있게 다니고 가볍게 달리고 즐겁게 놀면 될 일이다. 세금이 거의 없고(연말에 납부하라고 자동차세 고지서가 와 있는데 1만 1900원이다.) 주차요금, 고속도로 통행료도 절반이다. 어딜 가면 경차전용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대우 받는 것이다. 12월 25일 현재 1130km쯤 탔다.
레이와 함께 10년, 15년쯤 잘 지내고 싶다. 주차장에서 주차하기 위해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다. 앞뒤 잘 살피기 위해 차 문을 열었다. 지나가던 어떤 분이 말한다. “레이~!” 나는 씩 웃었다.
2.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36번 보았다
최근 몇 해 동안 한 해를 돌아볼 때 빠지지 않는 건 극단 큰들의 마당극 관람과 관련한 것이다. 유일한 주말 취미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일요일엔 산청, 하동으로 달려가 마당극을 관람했다. 혼자 갈 때도 있고 아내와 갈 때도 있었다. 다른 지인과 함께 가기도 했다. 같은 마당극을 여러 번 보았다. 올해는 36번 보았다. 2018년부터 치자면 229번 보았다.
마당극 대본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배우도 한 명씩 바뀌는데 그것 또한 신기하고 재미있다. 마당극 보러 갈 때 이따금 배우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걸 사주기도 한다. 멋진 공연을 공짜로 보기 미안해서이다. 큰들 젊은 단원끼리 결혼할 때는 축하해 주기 위해 거창까지 갔다 왔다.
특히 올해는 산청마당극마을에 ‘까망극장’을 개소했는데 사흘 동안 축제를 했다. 나는 사흘 연속 다녀왔다. 유별난 관객이자 후원회원이다. 큰들이 진주시 이현동에서 운영하는 공간오늘에도 거의 매월 갔다. 기억해보니 한 번 빼고는 다 간 것 같다. 술도 많이 마셨지만, 무엇보다 아코디언, 기타, 장구 등 여러 공연을 즐긴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이맘때는 마당극 관람 후기를 모아서 책자로 인쇄하고, 큰들 사진을 모아 달력도 만들고 사진첩도 만들었는데, 올해는 마음은 어지럽고 정신은 복잡하여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 이런 해도 있다.
3. 진주청년문학회 회보 통합본을 내었다
진주청년문학회가 있었다. 1989년 12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12년 동안 진주지역에서 활동했다. 이름에서 보이듯 젊은 문학도들의 모임이다. 회보는 월간으로 내다가 격월간으로 내다가 계간으로 내기도 했다. 활동을 못하게 될 때 마지막으로 낸 회보는 41호이다. 나는 중간에 회장도 했는데 회원으로 활동한 사람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활동을 중단한 지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우리는 모이기 시작했다. 연락처를 갖고 있는 몇몇이 모여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그동안 나온 회보를 하나로 묶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가 처음 나온 해로부터 다시 10년 더 지난 뒤에 드디어 올해 <청년문학> 통합본을 냈다.
내가 총대를 멨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하는 선배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예전에 나온 회보를 그대로 복사하여 제본한 것이다. 각자 귀중하게 보관하던 회보를 한 권씩 내놓아준 덕분에 창간 준비호부터 마지막 호까지 모을 수 있었다. 11월 말 회원들에게 통합본(모두 3권, 3600여 페이지)을 보냈다. 대부분의 비용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가 부담하였고 회원들은 복사비 용도로 5만 원씩 냈다. 머리말을 썼는데 오류가 많았다. 다시 써서 보낸다고 해 놓고는 해를 넘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낸 회보가 41호인데 35호라고 적었고(할 말이 없다), 회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적었는데 누락된 분이 많다. 더 늦기 전에 새로 써서 회원들께 보내야 할 텐데. 책장을 넘겨보니 내 이름이 적힌 콩트인데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도 있다.
회원들의 소소한 소식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20대, 30대였는데 지금은 50대 말이다. 늙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청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 있다. 그래도 마음은 청년이라고, 정신은 젊다고 생각한다. <청년문학> 통합본을 낸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모든 게 여러 선배와 후배 덕분이다. 진해에 있는 경남문학관에 2질을 보냈다.
4. 통풍에 걸렸다
5월 말경 왼손 손가락 세 개의 가운데 마디가 아팠다. 아침에 주먹을 쥐어보면 통증이 느껴졌다. 낮 동안 일할 때는 괜찮았다. 터널증후군의 하나라고 짐작했다. 내과에 혈압약 타러 간 김에 물어보았다. 류머티즘일지 모른다며 피를 검사했다. 통풍 수치가 높다는 문자가 다음날 왔다. 그때 조심스럽게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의사의 정확한 판단이 없었더라면, 나는 정형외과로 갔을 것이다.
의사와 약사가 이구동성으로, 가장 먼저 술과 육류를 금하라고 했다. 그 외 조심할 게 많다. 60일 동안 조그만 알약을 하나씩 먹어야 한다. 주의 사항 중에 ‘술(맥주, 보드카 등)’이라는 대목을 유심히 본다. '그럼 소주는?'이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주윗분이 통풍 걸렸다고 말할 때 예사로 생각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고 했을 때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바람만 스쳐도 아픈 정도는 아니다. 그저 견딜 만하다. 더 나빠지기 전에 조심하자, 라고 생각했다. 60일 동안은 내 몸을 좀더 성의 있게 대하자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연말까지 계속,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매일 알약 하나를 먹어야 할 것이다. 혈압약 타러 갈 때 통풍약도 곁들여 주문하게 생겼다. 남은 인생 함께 가는 친구가 하나 더 늘었다고 여기자.
5. 경상국립대 입사한 지 21년이 되었다
2004년 3월 1일 현재 직장에 왔다. 2024년 3월 1일 20년이 되었다. 2024년 10월 16일 개교기념식에서 20년 근속상을 받았다(행사장엔 가지 않았다). 먼저, 과거와 현재 동료들이 참 많이 고맙다. 돌아가신 어버이와 모든 가족 덕분이다. 첫 직장까지 합하면 32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한 일 즉, 내가 쓴 글과 내가 한 말이 어떤 이에겐 도움이 되었겠지만 어떤 경우엔 화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저 널리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날 점심 먹고 들어오니 책상에 꽃이 놓여 있었다. 내 얼굴이 나오는 사진도 있고 뒷면에는 진심이 담긴 인사글이 적혀 있다. 한참 서 있었다. 창밖을 보았다. 메타세쿼이아는 노릇노릇 가을을 담고 하늘은 청청명명 세월을 안고 있었다. 목이 말랐는데 용케 잘 참고 퇴근시간까지 버텼다.
그날 저녁 간단히 먹고 들어와 책상에 앉아 또다시 한참 생각했다. 다가올 날이 무섭고 두렵다. 하루하루가 버겁다. 솔직히 그러했다. 그러한 감정은 해를 넘기는 시점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한 마디 남겨 두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잘한 건 당연한 일이고, 잘못한 건 반성해라.” 그때 이런저런 선물을 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일일이 이름을 말할 수는 없다.
6. 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기운은 점점 빠진다
직장 일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생각을 깊고 넓게 하는 게 힘들다. 단어를 생각해 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오타가 늘어난다. 내가 맡은 일은 더 늘어났고 내가 챙겨야 할 일은 더욱 늘어났다. 내가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구분은 모호하다. 분명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 같은데 어느 새 내가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바보가 되어 간다. 그러면서도 자신감은 점점 짜부라진다. 지난해보다 더 작아졌고 지지난해보다 더더 작아졌다. 어떤 날엔 내 존재조차 망각당하기도 한다. 망각당한다는 말은,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고 누구라고 말은 못하지만 상대방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며칠 없어져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영영 없어져도 내 직장은 정말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갈 것 같다. 그건 다행 아닌가. 오히려 없어져 주는 게 조직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이다. 겪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다 말할 수는 없다. 말해도 안 된다. 말한 것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들은 말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2024년의 일만은 아니다. 능력이 많이 모자란 사람이 한 자리에 너무 올해 있다가 보니 이런 불편함과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달라질 수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루 뒤 일을 모르겠고 일주일 뒤 일이 아득하다. 한 달 뒤를, 일 년 뒤를 어찌 알겠는가. 눈앞에 놓인 일을 붙들고 씨름하다 보면, 영혼이 소멸한 껍데기가 눈에 보일 뿐이다.
7. 아내는 남해까지 출퇴근하는데 6월에는 장마를 피해 원룸을 한 달하고도 열흘간 빌려서 살았다. 9월부터는 관사에 입주하는 행운을 얻었다. 12월 말까지 넉 달을 살고 돌아왔다. 내년에도 이어서 관사를 사용하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그만큼의 행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특히 겨울에는 어두울 때 왕복 2시간을 달려야 하고 눈이라도 오면, 길이라도 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머리에서,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8. 홍보실에는 9월에 새 식구가 한 명 왔다. 12월 말에는 다시 인사가 났다. 입사 때부터 함께 일한 지기지음 한 분이 다른 데로 갔다. 또 다른 한 분도 다른 데로 갔는데 맡은 일은 비슷하다. 새롭게 발령난 두 분은 1월 2일 출근하게 생겼다. 홍보실 업무를 지원하게 될 교수 한 명도 뽑았는데, 겸직이 된다. 이러저러해서 2025년에는 내 일과 내 일터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됐다. 변화 없이는 발전도 없고 변화 없이는 진보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혁, 혁신 없이는 퇴보하고 망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가장 큰 변화와 개혁과 혁신은 내가 홍보실을 떠나는 것이다. 새로운 안목과 실력과 포용심을 가진 분이 홍보실을 맡아 주면 좋겠다. 그날이 2025년 안에는 와야 한다.
9.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는 <하얼빈>, <행복의 나라>, <진주의 진주>, <범죄도시4>, <파묘>, <1980> 등이다.
2025. 1. 1.
지각으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