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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출근

이우기, yiwoogi 2024. 11. 12. 20:51

<퇴근 후 출근>

처제는 안산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배달전문점이다. 몇 번 먹었는데 아주 맛있다. 갈비김치찜, 삼겹살김치찜이 인기가 높다. 주말에 아내가 친정 다녀오면서 삼겹살김치찜을 가져 왔다. 한번 먹고 남은 걸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 저녁에 꺼냈다. 양파와 대파를 조금 썰어 넣었다. 안주로 보였다. 먹다 남은 소주와 맥주를 비벼 서너 잔 마셨다. 딱 좋다.

라디오 들으며 설거지까지 했다.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을 끄려고 해도 잘 안 된다. 혼잣말로 욕 하다가 한숨 쉬다가 말았다. 압력밥솥에 밥을 안쳤다. 아이쿱생협에서 산 오분도미에 찹쌀과 잡곡을 조금씩 섞었다. 15분 끓였다. 뜸 들인 뒤 식은 밥을 냉장고에 넣었다. 일주일치 밥이다. 라디오는 끝나지 않았다.

내일 아침 국물이 걱정되었다. 내일 저녁엔 술 약속이 있으니 모레 아침 해장도 걱정된다. 먹다 남은 걸 얻어온 황태채가 눈에 띄었다. 간장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쌀뜨물을 부었다. 매운고추와 양파를 넣었다. 거의 모든 반찬에 고추, 양파, 대파를 넣는다. 보글보글 끓을 즈음 달걀 두 개를 풀어서 부었다. 맛을 보니 딱 됐다. 이틀 아침밥 굶을 일은 없겠다. 라디오 방송은 계속됐다.

추석에 얻어둔 마른 산나물과 표고가 보였다. 둘 다 물에 씻고 데쳐야 하는데 그걸 까먹었다. 산나물을 물에 잠시 불렸다가 냅다 볶았는데 별로다. 간장 조금, 참기름 조금, 다진 마늘 조금, 된장 조금, 정성 많이 넣었는데, 영 별로다. 파이다. 산나물에 묻어 있던 흙인지 먼지인지 모를 것이 씹힌다. 된장을 많이 넣었는지 액젓이 과했는지 매우 짜다. 실패다. 표고버섯도 비스무리하게 했는데 먹을 만하다. 승률 50%면 족하다.

베란다에 널어 놓은 빨래가 보인다. 그럼 세탁기에도 빨랫거리가 있겠지. 가루비누를 넣고 돌렸다. 헹굼까지 한 뒤 섬유유연제를 넣고 다시 헹구고 짰다. 그 사이에 마른 빨래는 개키고, 새로 세탁한 빨래는 널었다. 탈탈 두어 번씩 털고 널었다. 라디오가 끝나고 유튜브가 떠든다.

저녁 먹은 뒤 6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가사노동이라는 걸 했다. 즐겁게 했고 재미있게 했고 신나게 했다. 어떤 건 잘했고 어떤 건 잘못했다. 괜찮다. 뭐든 다 잘하면 좋겠고 뭐든 다 잘못해도 괜찮지만, 어느 것은 잘하고 어느 것은 잘못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고 여긴다. 어깻죽지 아프고 뒷골 당기고 이맛살 찌푸리게 하는 일터에서 퇴근하여, 눈도 코도 입도 마음도 즐겁고 신나는 일터로 출근했다. 사진은 한 장도 찍지 않았다.

2024. 11 . 12.(화)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