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 yiwoogi 2022. 2. 4. 21:50

<또 다짐>

 

빵모자로 이마 가리고 마스크로 입과 코 가린다. 이어폰으로 귀 막는다. 걷는다. 오른다. 내려온다. 사이사이 여러 번 쉰다. 바람이 차다. 입춘이 무색하다. 이틀 연속 숙호산을 짧게 걸었다. 땀은 날락 말락 했다. 장딴지는 딴딴했다. 허벅지는 퍽퍽했다. 발목에도 전기가 왔다. 몇 달 만에 동네 뒷산 오르기를 시작했다.

 

5시 30분부터 1시간 걸린다. 배가 고프다. 점심을 딴딴히 먹었는데도 금세 배가 꺼진다. 방귀를 뀐 것도 아닌데 뱃가죽이 헐렁하다. 주머니에 든 초코파이를 몇 번 망설이다가 참았다. 산에 오를 때 다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충 씻고 밥상을 차렸다. 식은 국을 데우고 달걀을 구웠다. 막걸리 두 잔과 함께 허겁지겁 배를 불렸다. 벽에 등을 기대며 생각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산에 안 가는 게 낫겠다.'

 

다시 생각한다. 그래도 매화 움 트는 것 보려면 가야지. 해토머리 뾰족뾰족 비집고 올라오는 풀들 마주하려면 가야지. 들 지나 산 오르고 산 넘어 들로 내려오다 보면 봄과 마주하지 않을까. 9월까지는, 10월까지는 이렇게라도 해야 겨울을 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내일도 가자. 내일도 갈 것이므로, 모로 누워 텔레비전 보고 큰 베개에 기대어 잠시 졸아 보자.

 

2022. 2. 4.(금)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