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 yiwoogi 2020. 12. 1. 16:44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만으로 동굴에서 100일을 견뎌야 했습니다.

호랑이는 참지 못해 뛰쳐나갔고 이겨낸 곰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곰의 후손들입니다. 신화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1500여 아들이 입대한 지 100일 지났습니다.

배고픔과 졸음을 참으며 5주를 견뎠고 특기학교를 거쳤습니다.

곰처럼 미련하게 호랑이보다 용맹하게 자신을 극복했습니다.

펄펄 끓던 진주 하늘과 땅을 이불과 베개 삼아 잘 지냈습니다.

 

공군교육사령부는 진주사람인 저에게는 익숙한 이름입니다.

서울, 강원, 제주에서 오신 분들은 낯선 땅이었을 겁니다.

아들들은 거기서 21개월을 버텨낼 신묘한 재주들을 익혔습니다.

부모보다 가까운 소대장, 더 가까운 동료들에게서 사랑을 배운 겁니다.

 

다시 전국으로 흩어진 817기 공군들이 동굴보다 낯선 환경에 놓였습니다.

마늘 맛도 알고 쑥뜸 효능도 알아차렸는지 이젠 전화도 뜸합니다.

“못하겠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은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곰처럼 사람으로 환생한 것이라고 믿어도 되겠습니다.

호랑이처럼 부모 품을 벗어나려고 포효를 하는지도 모르죠.

 

기다림과 그리움과 아픔과 안타까움과 한숨은 우리 몫이었습니다.

곰도 모르고 호랑이도 하늘의 뜻을 몰랐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하늘은 아니지만 ‘부모’이기에 다 알고 있습니다.

버티고 견디고 이기는 법을 배워가는 아들들을 봅니다.

안타까움과 대견함, 안쓰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수백 번 교차합니다.

 

저들에게 소대장이 있고 전우들이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에겐 부곰카페가 있습니다. 선배, 동기, 후배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단단한 울타리가 없고 든든한 언덕이 없을 겁니다.

오고가는 말씀과 주고받는 대화와 말없이 흐르는 정이 있습니다.

100일 동안 농익어 걸쭉해진 막걸리 같은 인정이 쌓입니다.

 

100일 지났습니다. 사실은 남은 기간이 훨씬 더 깁니다.

그러니까 이제 겨우 100일 지났습니다. 일병입니다. 일!

지나온 길은 아득합니다. 남은 날은 더 까마아득합니다.

2022년 5월 23일까지 날짜를 세지 않습니다. 오긴 오겠죠.

 

그동안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잘해 준 아들들이 고맙습니다.

목소리가 굵직해진 만큼 가늘어진 허리가 마음에 쏙 듭니다.

어버이를 바라보는 다정하고 웅숭깊은 눈길이 듬직합니다.

무심코 한번씩 날아오는 문자와 별 사연 없는 전화가 감동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군인 부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공군 부모가 되어 마음을 엮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모든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2020. 12. 1.

이우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