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이 다가오면 윗마을 아랫마을 청년들이 경쟁하듯 커다란 달집을 지었다. 소나무를 베고 대나무를 쪘다. 새끼를 꼬았고 짚을 얹었다. 달집은 보름 앞날 저녁까지 지었다. 눈썰미 있고 손재주 좋은 형들이 그럴싸하게 달집을 만들어 놓으면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 킬킬거렸다. 어머니들은 소원을 적은 종이나 천 쪼가리를 걸었다. 겨우내 날리던 연도 걸었다. 윗동네 아랫동네 청년들은 밤새 달집을 지켰다. 누가 언제 소나무를 빼내갈지 몰랐기 때문이다. 보름날 저녁 언덕위에 올라간 누군가 "달 떴다!"고 외치면 기다리던 어른들이 불을 댕겼다. 불은 수십 미터 하늘로 치솟았다. 솔잎 타는 매운 내가 코를 찔렀고 대나무 터지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했다. 불기둥 열기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어른들은 막걸리 잔을 돌렸고 우리는 쥐불놀이를 했다. 콧물 훌쩍이며 밤늦도록 싸돌아다녀 코피가 나기도 했다.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며 한해 풍년농사를 빌었다. 소원이 적힌 종이는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불씨는 다음날 하교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 정월대보름달 바라보며 빌었던 소원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 이렇게 밥 벌어먹고 사는 걸 보면 소원이 이뤄졌다고 해도 되겠다. 2020년 2월 8일 토요일 오후 6시 4분, 낮술에 취하여 헤롱거리며 비틀거리면서도 아파트 사이에 떠오른 보름달을 찍었다. 달을 찍었다고 하기엔 주변이 너무 환하다. 그래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은 빌었다. 다만, 기억나지 않을 뿐이다.
2020. 2. 9.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