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출연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에서 ‘2018년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하여 주신 덕분에 팔자에 없는 방송출연을 하게 됐다. 사양하는 게 맞았지만, “우리말, 우리글 사랑하자”고 한마디할 기회를 뿌리칠 수 없었다. 지킴이로 뽑히지 않았더라도 해야 할 말이었고, 더구나 이미 라디오에도 나갔으니...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덕분에 윗분들 모시고 서경방송 8층 스튜디오에 여러 차례 가 봤지만, 내가 저 자리에 앉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분장하고 자리에 앉은 윗분들께 침착하게, 편안하게, 평소대로 말씀하시면 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미리 정하여둔 질문과 답변이 있었지만 꼭 그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국어책 읽듯이 해서는 안 된다. 대본을 보지 않고 유창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대충 곁눈질해 가면서 묻는 말에 대답은 했다. 발음이 꼬였고 생각해 뒀던 말을 놓친 게 많다. 녹화하는 것이어서 몇 번이든 다시 하자고 할 수 있었으나 더 잘할 자신은 전혀 없었다.
진행하는 사회자가 편안하게 해주어서 그나마 좀 덜 떨었다. 카메라 다루는 분들이 자리를 비우고 바깥에서 진행했는데 덕분에 덜 긴장됐다. 둘이 마주앉아 소주 한잔하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끝나고 나니 더욱 걱정된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할 말을 최대한 전달하고자 했으나 끝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고 싶은 말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말, 우리글 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생각보다 쉽다. 결혼식, 아이 돌잔치 초대장 만들 때 영어로 ‘invitation’이라고 하지 말고 ‘초대장’ 또는 ‘삼가 모십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둘째, 말과 글은 정부 기구나 시민사회단체 들에서 정책의지를 갖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쉽게 바꿔나갈 수 있다. ‘국민학교’라는 말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고속도로 ‘갓길’을 ‘노견’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셋째,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 교육을 맡은 분들, 공문서를 다루는 분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나중에 방송 보시는 분들이 이런 마음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다. 떠듬떠듬 더듬는 말 속에 진정성이 깃들여 있음을 느껴주시면 더 고맙겠다. 그리고 한두 번쯤 스스로 하는 말, 쓰는 글을 되돌아 보아주신다면 더없이 고맙겠다. 그런 마음이다. 여기에다 이렇게 미리 알려 두는 것은, 어느날 방송 화면에서 이마 벗겨진 놈을 보더라도 놀라지 마시라는 뜻이다.
2018. 10. 24.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