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 yiwoogi 2018. 7. 19. 13:04

꿈을 꾸었다. 아침 530분쯤 깼다가 다시 일어난 게 6시였다. 그사이 꿈을 꾸었으니 30분 단막극이다.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고등학교 교실은 엉망이었다. 천장엔 거미줄이 가득했고 바닥엔 먼지와 쥐똥, 바퀴벌레 시체들이 널렸다.

 

맨처음 교실엔 그 반 담임선생님이 일찍 나와서 청소를 하고 계셨다. 두 번째 교실에서도 선생님이 나와 계셨다. 오랜만에 만날 제자들을 위해 새벽잠을 설치고 나온 선생님들께 인사를 했다.

 

세 번째 교실인 우리 반은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치울까 싶어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옆반 선생님도 청소를 하는데 학생인 내가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싶어 책걸상을 뒤로 밀었다.

 

교실 구석에 있는 빗자루와 밀대걸래를 들고 왔다 갔다 했다. 그새 친구 두 명이 나왔다. 힘을 합하여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내가 들고 있는 빗자루는 작고 보잘것없었다. 그 빗자루를 가지고서는 하루 종일 청소를 해도 다 못할 것처럼 보였다. 마대걸래도 작았다. 그 마대걸래로 교실 바닥을 다 닦으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이상했다.

 

다른 친구들이 들고 있는 빗자루는 한번 휘젓기만 해도 먼지가 말끔히 쓸려 나갈 정도로 크고 멋있었다. 마대걸래가 지나간 자리엔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됐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외쳤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왔다 갔다 해!’ 나는 있으나마나한 빗자루와 마대걸래를 들고 교실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했다. 목소리는 다시 속삭였다. ‘잠시 후 선생님이 출근하시면 지금 청소하는 우리 몇 명을 아주 좋게 봐 주실 거야. 그러니 손에 든 게 비록 볼품없는 청소도구이지만 어쨌든 청소하는 척하고 있어야 해. 그나저나 우리 선생님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땀이 비오듯 하는데.’

 

잠을 깼다. 얼굴과 등에 땀이 흥건했다.

 

심하게 부끄러웠다. 감춰져 있는 나의 내면에다 현미경을 들이댄 기분이었다. 친구들보다 작은 걸래를 들었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어떡하든 청소하는 모습을 선생님께 보여드려야 한다고만 생각하던 꿈속의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꿈은 반대라고도 하고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부끄럽다.

 

2018.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