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고스톱 놀이를 보다가 생각난 것들

이우기, yiwoogi 2015. 4. 26. 22:24

3명이 고스톱을 친다.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가장 낮은 사람의 이마를 때린다. 꿀밤이라고도 하고 딱밤이라고도 한다. 맞기 직전에 극도로 긴장한다. 오만상을 다 찌푸린다. “!” 소리가 난다. 맞은 사람은 이맛살을 찡그린다. 아픈 모양이다. 발갛게 자국이 남는다. 맞은 사람은 두고 보자!”며 설욕을 다짐한다. 때린 사람은 기분 좋게 웃는다.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이다. “두고 보자!”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 한 판을 더 쳐서 만약 먼젓번에 맞은 사람이 이겼다고 치자. 그래서 반대로 먼젓번에 자기를 때린 사람의 이마를 힘껏 가격했다고 하자. 그러면 자기가 맞은 사실이 없어지나. 자기가 맞으면서 인상 썼던 기억이 없어지나. 자기가 맞아서 이마가 벌게졌던 게 없어지나. 이번에 이겨서 자기가 한 대 때렸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만, 조금 전에 한 대 맞으면서 조마조마하고 분하던 마음이 사라지나.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면서 한 대씩 두 대씩 때리고 맞고 나면 나중에 뭐가 남을까.

고스톱을 기분 좋게 치려면, 돈 따먹기 하지 말고 때리기도 하지 말고 그냥 바둑알 따먹기나 하다가 그만하고 싶으면 바둑알을 흰 알과 검은 알로 나누어서 그릇에 담으면 되겠다. 그것도 심심하면 밥 안치기, 설거지하기, 이불 개기, 심부름하기 같은 내기를 해도 좋겠지. 아니면 최고한도를 정해두지 말고 무한정 점수 쌓기 놀이를 해도 되겠지. 평생 동안. 그러면 짜릿한 긴장감은 적을지 몰라도, 아프거나 놀라거나 화나거나 할 일은 평생 없게 된다.

세상살이하는 이치도 그렇지 아니한가. 딴 사람이 내 차를 긁었으면 나도 다른 사람 차를 긁어야 시원한가. 그러면 내 차의 자국이 사라지고 그때 기분 나빴던 내 마음이 없어지나. 실수로 한 것이라면 그냥 넘어가거나 꼭 필요한 수리비만 받으면 되겠지.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경찰에 신고하여 처벌받도록 하면 되겠지. 집에 도둑이 들어 무엇을 훔쳐갔을 때 다행히 경찰이 찾아주면 고맙겠지만 못 찾으면 어찌 되는가. 나도 남의 집에 들어가 필요한 물건을 갖고 올 수 있는가.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업신여기고 작은 전쟁을 일으켰다. 작은 나라는 대놓고 맞붙는 전쟁으로는 안 되겠으니까, 게릴라전으로 강한 나라를 괴롭힌다. 그러자 강한 나라는 이번에 아예 죽어봐라.” 하고 부수고 깔아뭉갠다. 피해를 크게 입은 나라는 성전을 외치며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어린이나 여자나 늙은이나 온 국민이 복수를 맹세한다. 그렇게 복수하고 전쟁에 전쟁을 이어나가면, 맨 먼저 당한 고통이 없어지고 그때 죽은 국민이 되살아나나.

고스톱 놀이를 보다가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평화는 어떻게 만들고 지켜나가는가. 복수의 연속선은 누가 어디쯤에서 끊어야 하는가. 내 고통의 기억을 반드시 상대방에게도 안겨주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래야 개운하고 통쾌한 것인가. 세상살이에 이기고 지는 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기는 것이나 지는 것이나 고통스럽지 않고 아프지 않을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2015.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