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 yiwoogi 2012. 3. 16. 13:43

연말연시 신문, 방송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나눠주는 따뜻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아직도 연탄으로 밥을 해먹는 집이 있는가 싶은 이도 있겠지만, 나는 연탄이라는 말에서 먼저 온기를 느낀다.

자식들 앞날을 위해 1979년 진주로 이사 온 아버지는, 농사일 말고도 조금 할 줄 알던 공사장 미장이나 목공일을 시작했고, 어쩌다 연탄보일러 수리공이 되었다. 보일러가 아닌 그냥 아궁이에 연탄을 때다가 비명에 가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끔 보도되곤 하던 때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여 연탄보일러 수리 기술을 배웠는지는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일요일 집에서 쉬고 있으면 보일러 아저씨 계세요?”라며 찾아오는 옥봉봉래장대수정동 부근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났다.”거나 기술자를 불러 수리했는데도 소용이 없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간밤의 음주로 인한 피곤함 따위는 벌써 잊었다는 듯이 두말없이 자전거를 타고 출동하셨다.

한 번 아버지의 손길을 거친 연탄보일러들은 꽤 오랫동안 제 성능을 발휘한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첫 고객의 소개로 우리 집을 물어물어 찾아오는 고객을 참 많이도 봤다. 그러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바로 이웃집 보일러 고치는 일에 출동한 적도 있다. 원래 있던 고장난 보일러를 떼어내고 새 보일러를 앉히고 시멘트를 바르고 난 뒤, 연탄불을 피워 제대로 타는지 보일러 통 물이 이상 없이 잘 도는지를 꼼꼼하게 살필 때의 아버지는 장인’(匠人)이었다. 일에 대한 당신의 애정을 나는 어깨 너머로 느낄 수 있었다.

아래 연탄을 반듯이 잘 놓아야 구멍이 잘 맞는다.” “보일러 통 물이 줄어들어 공기가 들어가면 따뜻한 물이 안 돈다.” “아무리 연탄을 많이 때어도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놓지 않으면 따뜻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주의사항은 대략 이랬다. 엄동설한에 절절 끓는 아랫목에 언 발을 밀어 넣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솜씨에 한 번쯤은 감탄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몇 달 전 폐암 진단을 받아 해를 넘기며 힘겨운 투병을 하고 계신다. 연탄보일러 수리하는 일이나 공사장 미장 같은 일에서 손을 놓은 지는 벌써 10년도 더 되었지만, 아버지의 손길을 기다리는 연탄보일러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을 텐데, 아버지는 당신의 가슴과 추억 속에 온기를 피워 줄 따뜻한 사랑의 보일러가 절실해지셨다경남일보 2012.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