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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2023년 여름 휴가

by 이우기, yiwoogi 2023. 8. 18.

8월 12-17일은 여름 휴가 기간이었다. 12-13일은 주말과 휴일이고 15일은 광복절이다. 진짜 휴가는 3일간이다. 어쨌든 모처럼 긴 휴가였다. 


안산 처가에 다녀왔다. 장인, 장모님 건강하신 것 보고 처제 사업 잘하는 것 보고 돌아왔다. 처제의 배달전문식당 '으니네밥묵자'가 안산 제일의 밥집으로 성장하기를 빌었다. 아마 될 것이다. 작은처남의 빵가게 '맘스(MOMs)베이커리'도 안산 제일 가는, 국내 으뜸 가는 빵집으로 길이 빛나기를 빌었다. 가는 길 오는 길 운전은 즐거웠지만 좀 힘들었다. 상하행 휴게소에서 한번씩 충전하는 시간에 점심을 때웠다. 이제 11월 장인어른 생신 때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혼자 영화를 두 편 보았다. 혼자 영화 보는 걸 즐기는 편이다. 페이스북은 해마다 이맘때 휴가를 맞이하여 혼자 영화 본 추억을 올려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밀수>를 엠비씨네에서 조조할인으로 보았다. 9000원이었다. 앞의 것은 이병헌을 위한 영화였는데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뒤의 것은 김혜수의 영화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에 좋았다. 둘 다 '우리나라 영화 참 잘 만든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영화 예약을 집에서 인터넷으로 하는데 번번이 비밀번호를 몰라 헤맨다. 그런 걸 깨닫는 휴가이기도 했다. 엠비씨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차단기가 고장 나 20분가량 서 있었다(내 앞의 앞의 차였다). 인건비 줄이기 위해 사람을 없앤 건 이해하겠다. 하지만 고장 났을 때는 기술자가 5분 내에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술 진보는 싫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두 번 보았다. 새 작품 <이상해 지구 뜨거워 지구>를 한 번은 아내와, 한 번은 혼자 보았다.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마당극이다. 실내 전용이다. 어린이가 좋아하겠는데 어른들이 먼저 보아야 할 마당극이다. 오랜만에 재미 없는 후기를 좀 길게 썼다. 마당극을 보는 시간은 오로지 나의 시간이다.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저 웃다가 울다가 손뼉 치다 보면 1시간이 지나간다. 이만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을까 싶다. 본 마당극을 또 보러 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새 마당극이 크게 성공하기를 빈다. 덩달아 큰들도 더 높고 크게 번영하기를 또한 빈다. 


다솔사에 다녀왔다. 아내가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새 일자리를 얻었다. 다솔사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아내는 다솔사 갈 때마다 적멸보궁을 비롯해 절집마다 들어가서 절한다. 탑도 돈다. 시주도 한다. 그 덕분이라고 여긴다. 아내는 결혼 후 25년 동안 최소 20가지 넘는, 어쩌면 30가지쯤 될 아르바이트와 계약직과 기간제와 정규직(이지만 오래 못한)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사회복지사 1급을 따고 청소년상담사를 따고 교육복지사를 따고 하는 동안 나는 무심한 듯 바라보기만 했다. 해줄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아내는 목표하던 것을 이루었다. 9월부터는 남해군 어디에서 근무할 것이다. 배울 점이 무척 많고 아주 사랑스러운 아내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의 보살핌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내는 시어른들께도 무척 잘하였으니까. 두루두루 감사한 일이다. 


함양에 사는 김석봉 형님 댁에 다녀왔다. 광복절 쉬는 날인데 굳이 찾아가 민폐를 끼치고 왔다. '다녀왔다'고 하는 건 정식 민박 손님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마당에 가득한 꽃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꽃잠' 막걸리 맛과 돼지고기 수육 맛이 혀끝에 남았다. 형님과 형수님의 건강도 고마웠고 많은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모습도 좋았다. 아들 내외와 손녀도 반가웠다. 그들도 나를 기억해 준 게 고마웠다. 아침 해장까지 잘 하고 돌아왔다. 석봉 형님이 <경남도민일보>에 기고한 글을 다시 페이스북에 올렸다. 형님의 결론에는,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동의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하다. 

 


창원에도 한 번 다녀왔다. 작은형 만나 오리탕 한 그릇 대접했다. 아내가 새 직장 얻은 걸 기념하여 밥값을 냈다. 작은형은 살아가는 이야기, 밥 해 먹는 이야기, 두 딸 이야기, 사업 잘 되는 이야기들을 말했다. 자랑스러운, 그리고 항상 고마운 작은형이다. 나는 아내가 처리할 일을 제대로 잘 하도록 부지런하고 안전하게 운전했다. 경남도교육청에 딸린 기관에 서류 등록을 할 동안 나는 전기차를 충전했다. 창원국제사격장 주차장이었다. 따분하고 후텁지근한 시간도 나는 즐거웠다. 고마운 마음이 나에게 가득했다. 오며가며 조금 피곤한 운전병 노릇도 즐거웠다. 


여고국수, 영래밀면 한 번씩 다녀왔다. 여름에는 국수와 밀면이 최고다. 냉면도 좋고 막국수도 좋겠다. 이번에는 국수와 밀면을 먹음으로써 여름임을 실감했다. 영래밀면 사장이 청계란 15개 한 판을 주었다. 파는 건데 공짜로 주었다. 그걸 차에 싣고 마당극 보러 갔다. 실내에 들고 들어갔다. 김석봉 형님 댁으로까지 갖고 갔다. 저녁에 삶아 먹자하던 게 까먹고 말았다. 돼지수육과 '꽃잠' 막걸리에 정신이 팔린 탓이다. 결국 다음날 형님 댁에서 떠나올 때 형수님께 드렸다. 창원으로 가는 차 안에까지 둔다면 삶은 달걀이 될 것 같아서이다. 형님께서 잘 드셨기를 빈다. 영래밀면 김봉기 씨께 고맙다는 말씀 전한다. 

 

영래밀면의 물밀면


생각해 보니 책을 읽지 않았다. 강희근 교수님 시 몇 편 읽고 정호승 시인 시 몇 편 읽다가 말았다. 신문도 열심히 읽지 않았고 뉴스도 애써 찾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도 세월은 잘 흘렀고 날씨는 더웠다. 신정일의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을 읽으려 마음 먹었는데 머리말도 다 읽지 못했다. 정여립 사건을 다룬 책인데, 한동안 멈추었던 조선시대 역사 책 읽기의 신호탄으로 삼으려다 실패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조선시대 관련 책 아무거나 5권 이상을 읽는 것이 새로 정한 목표이다. 달성하고 싶지만 못해도 할 수 없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므로. 


직장에서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단체카톡방이 자꾸 울렸다.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휴가인 줄 모르고 카톡으로 일거리를 알려주는 분이 많았다. 어떤 건 지시고, 어떤 건 부탁이고, 어떤 건 의뢰였다. 하지만 그냥 일거리였다. 대부분 하지 않았다. 언론사에서도 전화와 문자가 왔다. 어떤 건 못 받았고 어떤 건 안 받았다. 못 받은 전화는 나중에 통화했다. 어디에 있든 완전한 휴가란 없다. 사표를 내기 전에 나의 시간과 의식과 영혼은 늘 저당잡혀 있다고 여겨야 한다. 그렇게 먼저 작정하고 나면 그나마 좀 낫다. 


거의 일주일 만에 사무실 나와서 바쁜 일 몇 가지 처리하고 이렇게 휴가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손가락 마디를 푸는 과정이다. 머릿속 생각이 손가락으로 전달돼 컴퓨터 화면에 노출되는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다. 컴퓨터 전자우편함을 열어보고, 그동안 모아둔 카톡 알림을 보니 오늘 하루가 참 길겠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저녁에는 반드시 마당극을 보러 갈 것이다. 이번 토, 일요일을 기분좋게 반납하는 일이 있어도...^^


2023. 8. 18.(금) 07:47
ㅇㅇ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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