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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황토식당

by 이우기, yiwoogi 2023. 1. 16.

<황토식당>

 

연세가 적지 않은 내외가 밥집을 한다.

차림표는 낡았다.

갈치구이, 갈치조림, 낙지볶음, 낙지조림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값도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건 많다.

수족관에 낙지가 있다. 반갑고 가련하다.

겨울에는 석유 난로가 있다. 여름엔 켜지 않는다.

반찬은 여남은 가지다. 안주인 손맛이 고스란하다.

오이 버섯 콩 멸치 가지 콩나물 숙주 파래 부추 따위다.

참기름 냄새는 정말 꼬소하다. 국산이라고 짐작한다.

바깥주인은 손님이 오면 김을 굽는다.

참말로 김은 이 밥집의 뚜렷한 상징이다.

김 찍어 먹는 간장이 있다. 참기름이 떠 있다.

간장만 따로 싸 가고 싶다는 손님이 종종 생긴다.

운 좋으면 달걀부침도 먹을 수 있다. 항상 주는 건 아니다.

된장국을 준다. 마주 앉은 사람마저 구수하게 만든다.

밥그릇 비울 즈음 숭늉을 내놓는다. 부른 배가 원망스럽다.

 

 

낙지볶음을 주문했다.

바깥주인이 수족관 낙지를 주방으로 옮긴다.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낙지를 못 본 척한다.

하얀 접시에 담긴 볶음의 빛깔은 천연색이다.

말랑말랑 탱글탱글 졸깃졸깃 낙지는 입에서 산다.

채소는 양념에 버무려져 본래 맛은 상승한다.

알록달록 맛은 이따금 일탈을 꿈꾸게 한다.

낙지만 먼저 건져 먹는 손님이 있다.

한 숟갈 크게 떠서 밥에 슥삭슥삭 비벼 먹는 이도 있다.

김에 싸 먹으면 세상에 없는 김밥이 된다.

아삭한 채소를 한 입 베어 무는 손님도 있다.

모두 골똘히 생각한다. 일탈이 곧 이탈은 아니잖아.

 

일어설 때라야 깨닫는다. 이 집 접시가 흰색이었구나.

신발 신을 때 느낀다. 내 뱃구레가 생각보다 좁구나.

바깥으로 나와서 함께 외친다. 아, 낮이었구나!

 

돌아오면서 한번 더 생각한다.

이런 밥집이 일터 가까이 있다는 건,

그래 이건 행운이자 축복이구나!

 

아, 갈치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겠구나.

 

2023. 1. 16.(월)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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