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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by 이우기, yiwoogi 2019. 3. 26.

2004년 6월부터 살던 신안동 국제아파트를 떠난다. 15년 살았다. 법원과 검찰청 새로 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주변 집들이 새집으로 바뀌는 것도 보았다. 동네는 조용했다. 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랫집 윗집 개 짖는 소리는 여름밤을 깨웠다. 바로 위층은 하도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는지라 직접 올라가 항의한 적도 있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그해 그런 뒤로는 너무 조용해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베란다에서 안방으로 빗물이 새어 윗집과 책임공방을 했는데 결국 내 돈으로 수리했다. 억울했지만 주먹다짐을 하거나 법원으로 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보현갈비, 안고집, 락영루 등 꽤 괜찮은 밥집과 술집이 있었고 아파트보다 유명한 펭귄유통도 정이 많이 들었다.
 
새로 이사갈 집은 지금보다 조금 넓고 비슷하게 낡았다. 5층 아파트의 4층이다. 딱 좋다. 전망도 좋다고 생각한다. 신혼부부가 살던 집인데 너무 깨끗한 상태여서 과연 여기에 사람이 살았던가 궁금할 정도다. 이사 날짜는 아직 모르겠지만, 4월 안으로는 갈 것 같다. 이런저런 일이 많은 4월에 이사 날짜와 겹치면 어쩌나 염려한다. 진주지역 여기저기에 우후죽순으로 솟아오르는 새 아파트는 언감생심 쳐다볼 수 없고, 그러고도 값 나가는 집들은 능력 밖이라, 호주머니에 든 돈에 맞는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들 학비도 아직 많이 들어갈 것이고 몇 해 안으로 자동차도 바꿔야 하고 이래저래 돈 나갈 일이 많아서 몸을 움츠린 것이다. 스스로 결정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 직장에서 퇴직금을 두 번 정산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퇴직하면 연금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아내의 수고가 고맙다. 일주일 동안 진주시내 웬만한 아파트는 다 돌았다. 어떤 데서는 왜 자기 아파트를 사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중개사들도 반 협박, 반 애원조로 매달리기도 했단다. 새 아파트로 이사가고 비워진 집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내는 하나하나 비교하고 챙겨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많이 지친 듯했다. 그 결과로 찾게 된, 곧 이사 갈 집이 가족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주변이 조용하고 숙호산과 가깝고 나불천이 넘겨다 보이는 곳에 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봐야겠다. 목욕탕은 가까이 있는지 중국집 짜장면은 맛있는지 가족 외식을 할 만한 식당이 근처에 있는지는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 이 집 주인과 계약하고 이사 날짜 잡고 은행 업무 처리하고 법원에 등기하는 일 등등 모두 아내의 일이다. 나는 돈 벌어다 주는 일 말고 별로 할 일이 없다. 다시 아내에게 고맙다.

새 장롱 사고 아들방에 새 침대 들이고 거실에 새 책장 짜 넣고... 등등 조사하고 선택하고 계산해야 할 일은 아직 많이 밀렸다. 케이블방송에 신고하고 에어컨 기사 부르고 도시가스 기사 연락하는 일들도 어지럽다. 15년 동안 무엇이든 가져다 놓기만 하고 내다버리는 일을 별로 하지 않았던 터라, 이번에 버리고 갈 것이 너무 많다. 주민센터 가서 초록색 딱지 수십 장 사야하게 생겼다. 이 또한 아내가 가려내고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다. 아내 없이는 이사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나 있겠지만 그동안 일어날 여러 가지 일들이 순리대로 물 흐르듯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한 달 뒤 행복한 이사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일을 앞두면 밑도 끝도 없이 걱정되고 긴장된다.

2019. 3. 26.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