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 12일 오후 5시 15분경 진주시 내동면 시내버스 공영차고지 앞 횡단보도에서 자동차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운전자도, 나도 운이 나빴다. 좌회전하는 버스 때문에 서로 시야가 가려진 것이다. 왼쪽 엉덩이와 허리 부분을 받혀 오른쪽으로 나동그라졌다. 119에도, 112에도 신고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파업중인 삼성교통 운전자로 보이는 남성 어른 서너 명이 곁에 있었다. 운전하였던 여성 어른은 처음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가 오는데 횡단보도를 들어오면 어떡하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목격자 들은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치어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나 대신 대거리를 해 주었다. 복음병원 응급실에서 찢어진 오른쪽 팔꿈치에 네 바늘 꿰맸다. 혹시 싶어 뼈 사진을 찍었으나 이상은 없었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사고 운전자는 병원에서 진심으로 사과하였고, “교통사고는 어찌 될지 모르니 입원하여 경과를 보라”고 권유하였다. 의사는 “이 정도 사고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보다 집에서 편하게 자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집으로 갔다. 다음날 보니, 오른쪽 허벅지에 아주 커다란 피멍이 들었고 그 멍은 점점 파란색, 보라색으로 번져갔다. 팔꿈치는 좀 쓰라렸다. 무엇보다 대퇴부와 어깨 깊숙한 곳에서 ‘기분 나쁜’ 통증이 견디기 힘들었다. 교통사고 환자 치고는 겉으로는 대단히 멀쩡했지만 깊은 속에서는 뭔가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병원과 한의원을 번갈아 다니고 있다. 2주 만에 꿰맨 실밥을 뺐다. 병원에서는 어깨만 물리치료해 주었다. 두 곳을 동시에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의원에서는 이곳저곳 아픈 것을 진맥하여 침을 놓고 부황을 떠 주었다. 진단서에는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정도라고 나와 있지만, 내일이면 3주인데, 썩 개운하지 않다. 특히 어깨는 팔꿈치가 받은 충격을 목뼈까지 전달하지 않기 위해 용을 썼는지 통증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일상 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찜찜하고 불편하다. 꿰맨 자국이 채 아물지 않은 팔꿈치는, 위치가 위치인지라 무엇에 곧잘 부딪히는데 깜짝깜짝 놀랄 만큼만 통증을 전해준다. 일상생활에서 팔꿈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이번주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라고 여기고 있다. 아무튼, 차에 받힌 것 치고는 이 정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음력 연초에 액땜을 한 것으로 여긴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다음날 오전에 전화하여 경과를 묻고 위로의 말을 했다. 나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서로 운이 나빴으니 그리 알고 전화할 필요 없다고 정중히 말했다. 보험회사에서 한번 전화하였고 역시 더이상 아프지 않을 만큼 치료받았다고 생각하면 내가 먼저 연락하겠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소문도 거의 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지난 뒤 잊혀질까 봐 여기 몇 자 적어 놓는다.
2. 3월 1일자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3월 1일자로 조교로 임용되기 위해서이다. 조교는 교원에 해당한다. 그리고 국립대에서 조교는 공무원이다. 또한 일반 직원이 60세까지 일할 수 있다면 조교는 62세까지 일할 수 있다. 교수는 65세까지이다. 공무원인 조교로 임용되는 과정에 많은 분들이 도와 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2004년 3월 경상대 홍보실에 입사하였다. 한 명뿐이던 홍보실 직원이 두 명 되었다. 인력이 100% 보강된 것이다. 처음엔 계약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2년 이상 근무하였고 앞으로 계속적으로 같은 업무를 맡을 계약직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이 생겼고, 나는 그 혜택을 입었다. 일반 직원과 같이 정년 때까지 그 직을 보장받은 것이다. 연봉은 해마다 계약해야 했다. 2019년 2월말까지 15년 근무했다. 공무원으로 첫 발령장을 오늘 오후에 총장님께 받는다. 비록 기자로서의 삶도, 홍보실에서의 일도 절반만 인정한 호봉을 책정받았지만, 그리하여 연봉은 무기계약직일 때와 같거나 아주 조금 깎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2년 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자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달라질 것은 없다. 홍보실에서 글 쓰고 사진 찍는 일을 계속한다. 학교로부터 혜택을 받았으니 새로운 각오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전문직업인으로서 자신을 가다듬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동료들과 화합하고 협력하고 소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생각해 보니, 교통사고 났을 때 “아이고 아야~!”라며 드러누워 한 일주일간 입원했더라면 나에게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논의가 진행되었고 현장에 내가 있었기에 오늘까지 오게 된 것 아닌가. 그 외 다른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아무튼 전화위복이라 여긴다. 세상 일은 새옹지마와 같다. 많은 분이 축하해 주셨는데, 인사받는 데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이 또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런저런 일이 언제였던지 모를까 봐 여기에 몇 마디 해 놓는다.
2019. 3. 4.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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