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저 사람 모아서 뭘 하려면 만날 날짜와 장소를 정해야 한다. 총무를 맡은 사람은 전화를 몇 번 돌린다. 요즘은 카카오톡이 있어서 아주 쉽다.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나면 올 사람 안 올 사람이 자동으로 결정된다. 그렇게 모임을 한다.
날짜와 장소를 정할 때 흔히 쓰는 말 가운데 ‘픽스’라는 게 있다. 누구든 쉽게 쓴다. 다들 알아듣는다. “날짜가 픽스 안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장소가 픽스되어야 준비물을 챙길 텐데.” 이렇게들 쓴다. “야, 날짜 장소 다 픽스해 놨는데 갑자기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해?”라고도 한다.
나날살이에서 무심코 쓰는 말 ‘픽스’는 늘 거슬린다. 아무리 애써도 귀에서 걸린다. 나는 이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냥 ‘결정’, ‘선정’, ‘고정’, ‘확정’이라는 말을 써도 되겠는데 말이다.
영어 ‘픽스(fix)’는 ‘고치다, 고정하다, 해결하다, 음식을 준비하다, 정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고정하다’와 ‘정하다’라는 뜻을 가져와서 우리가 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약속을 정할 때 누군가 “픽스됐나?”, “픽스하자!”고 말하면 “야, 그런 말 쓰지 말고 ‘결정했나?’, ‘결정하자!’라고 하자”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조정 보트의 좌석을 고정시키는 장치’도 ‘픽스’라고 하는데 이 물건은 또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냥 ‘고정장치’라고 하면 되겠네. ‘픽스’라는 가수도 있는 모양인데, 이들을 ‘고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다. 그냥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하며 한숨만 쉬어야겠다.
*사진은 가수 ‘픽스’다.
2019. 1. 15.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