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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해장국 한 그릇

by 이우기, yiwoogi 2018. 10. 6.




2. 쏟아지는 비를 우산은 막을 재간이 없었다. 다리는 흔들렸고 손목은 가늘었다. 술 탓이다. 간밤 귀가는 무척 늦었고 꽤 길었다. 어깨와 등과 무릎과 다리와, 그리고 신발은 다 젖었다.


3. 머리와 똥을 따지 않은 멸치를 끓였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외려 머리를 맑힌다. 버섯, 풋고추, 두부를 콩나물 비슷한 모양으로 다듬었다. 빨간고추와 후추 가루를 뿌리고 액젓을 부었다. 짭짤한 내음이 속을 다스린다.


1. 서로 얼굴 바라보며 쏟아낸 말들이 기어나왔고 불러제친 노래 가사가 튀어나왔다. 함께한 지난날 소담스런 추억을 안주 삼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너스레에도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반갑고 좋은 걸,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걸.


4. 어둑어둑한 거실에서 태풍 소식 들으며 몇 숟갈 말아 먹고 나섰다. 물은 길을 덮었고 버스는 해일을 만들었다. 짭조름한 해장국 한 그릇 저 길 위에 부어주고 싶다. 비릿한 멸치 맛국 냄새 저 하늘에 흩어주고 싶다.


2018. 10. 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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