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서 떨어지든 태풍에 떠밀려 날려오든 비는 비다. 준비할 게 몇 가지 있다. 우산, 장화, 비옷... 덤으로 뽀송한 마음과 상쾌한 기분도 갖추면 좋겠다. 여기에다 국수든, 칼국수든, 수제비든 밀가루 음식 한 그릇이면 만점이다. 비오니까.
사천 완사에 밀면집이 있는데 다슬기칼국수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밀면이야 먹어봤지. 깔끔했다. 이제 수제비 먹을 차례다. 가깝지 않은 길을 부지런히 갔다 왔다. 넷이서 인사도 제대로 못 차리고 수제비만 떠먹었다. 이런 날도 있는 법이다.
어머니는 사천 곤명 어느 개울에서 다슬기를 제법 주웠더랬다. 물이 줄줄 흐르는 자루를 버스에 실었다. 기사 양반 눈치가 없을 수 없을 터. 진주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승차 거부는 다행히 없었던 듯. 씻고 삶았다. 대개 여름이었다. 어머니는 피서라고 했지만 그건 명백히 숭고한 노동이었다.
에메랄드빛 같기도 하고 연둣빛 같기도 하고, 다슬기 삶은 물은 어떤 맛이었을까. 약간 고소하고 약간 달고 약간 떫다. 그다지 깊지는 않다. 개울처럼 옅으면서도 명치 끝을 쥐어잡는 듯한 느낌이다. 그걸 사랑의 맛이라고 말하였다. 추억의 향도 느낄 수 있었다.
완사 밀면집 다슬기수제비엔 누구의 사랑과 누구의 추억이 익어 있을까. 모르긴 해도 그 집 사장 내외의 정성과, 가끔 이 집 찾는 이들의 수제비처럼 얇은 추억이 차곡차곡 포개지고 있지는 않을까. 비 오는 날, 잡념이 좀 길어졌다. 덕분에 마음은 상쾌하고 기분은 뽀송해졌다.
2018. 10. 5.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