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씨엔 수업을 작파하였다. 날씨 모독은 자자손손 어쩌고 하는 말도 곧잘 썼다. 점심시간 학교 앞 '느티나무' 분식점에서 파전과 칼국수 안주 삼아 '막사이사이'를 쭈그러진 노란 주전자에 채웠다. 어떤 날은 21번 시내버스 타고 예하리 강주연못으로 튀었다. 도토리묵은 건드리지 않았다. 안주는 주변 경치로 충분했다. 벌게진 얼굴로 강의 후 퇴근하시는 심리학개론 교수님을 정문에서 뵌 것도 여러 번이다. 학점은 D를 받았다. 다행이다. 재이수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다. 1986년 일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떨까. 사는 게 팍팍해지니 생각하는 것도 여유롭지 않을 것 같다. 강의와 숙제에 청춘을 저당잡힌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곧 쏟아져내릴 것 같이 높아진 갈 하늘과 가늠할 수 없이 펼쳐진 들판을 감상할 겨를이 있을까. 달콤한 커피 향기를 맡으면서도 노트북 두들겨야 하는 젊음에 깃들인 영혼은 어떤 빛깔일까. 삼삼오오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가 나라, 겨레, 미래, 꿈, 인류, 우주 같은 데 닿을 수 있을까. 들어보고 싶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우리 시대 대학생들에게 낭만과 일탈을 선물하고 싶다. 그런 날씨다.
2018.9. 28.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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