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추석 명절 지나는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18. 9. 25.

추석을 앞둔 토요일에는 하동에 갔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진주지부장이 함께했다. 도토리묵과 해물파전을 안주 삼아 동동주 한 뚝배기를 나눠 마셨다. 얼굴은 붉어졌지만 취하진 않았다. 한 시간 공연을 알뜰히 즐기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 큰들 사무실 들러 차 한 잔 얻어먹고 간식으로 사천 완사 영래밀면 한 그릇씩 비웠다. 국물이 아주 개운했다. 어머니와 함께 추석 차례상 장을 보던 큰형과 통화했지만 결국엔 본가로 가지 않았다. 미안했지만, 나에게도 나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작은추석 아침 일찍 밥부터 먹었다. 아내도 서둘렀다. 아들은 잠에서 깨어나는 대로 달려오라고 일러놓고 본가에 갔다. 차례상에 올릴 것들은 이미 다 마련해 놓았다. 창고로 쓰는 아랫방엔 술, 과일을 비롯해 이것저것이 한가득이다. 장독대엔 미나리 등 나물 재료가 봉지봉지 담겼다. 냉장고에는 산적 재료부터 시작하여 헤아릴 수 없는 먹을 것들이 또한 한가득이다. 어머니는 안주 겸 반찬으로 먹을 고추전 재료를 버무리고 계신다. 동시에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만난 큰형은 식전이다. 어머니와 큰형과 아내의 아침상을 내가 차린다.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냉장고에 있는 겉절이, 물김치, 마늘조림 따위를 차리고 밥을 푼다.

 

전기 불판을 꺼내어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한다. 좁다란 마당이 곧 부엌이다. 아버지 제사 때 쓰고 넣어둔 불판에 기름을 두르고 열을 올린다. 올해는 불판이 두 개다. 하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추전을 구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적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전을 구울 것이다. 먼저 큰형이 고추전을 시작한다. 첫 판이 나오자마자 나에게 맛을 보라고 한다. 반죽이 좀 묽다, 좀 싱겁다 따위 맛보기는 내 몫이다. 간장 종지와 젓가락을 내어 온다. 나도 먹어 보고 큰형도 먹어 보고 어머니도 먹어본다. 부엌에서 전거리 준비 중인 아내에게도 한입 먹여준다. 맛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남겨뒀던 부추를 더 넣고 밀가루를 더 붓는다.

 

어머니는 생선을 찐다. 이건 민어, 이건 돔, 이건 무엇이라고 설명해 주는데 나는 전어 말고는 구분할 줄 모른다. 큰집 제물과 우리집의 것 이렇게 두 집에 필요한 것을 나누어 두 번 찐다. 지름 일 미터는 됨 직한 커다란 양은 솥을 가스불에 얹고 물을 붓고 그 위에 고기를 얌전하고 나란히 펼쳐놓는다. 너무 오래 찌면 허물어져 버리고 너무 짧게 찌면 채 익지 않아 비린내가 날 것이다. 시간 맞추고 불 조절하는 것의 반은 기술이고 반은 정성이다. 이 모든 건 경험이다.

 

아내는 각종 전 거리를 준비한다. 이미 끼워놓은 산적 외에도 연뿌리를 데치고 새우를 꺼내고 두부를 자르고 잘라놓은 고구마도 찐다. 서대고기 세 마리도 달걀을 입히고 꽁꽁 언 조기포는 우선 녹이고 떼어내는 게 일이다. 큰형과 아내가 나란히 앉아 식용유 통을 들었다 놨다 하고 새로 구운 것은 서로 맛을 보게 한다. 큰형 회사 정년하면 어디 막걸리 집이라도 열어 모듬전 안주를 대표로 내세우라고 농을 건다. 그러면 손님은 내가 다 모시고 간다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웃음이 넘친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난, 술도 취하지 않았는데 프라이팬에 손등을 덴다. 처음엔 노르스름하던 게 발갛게 부풀어 오르고 저녁무렵엔 껍질이 벗겨진다.

 

그 사이 창원에 사는 작은형이 도착한다. 오자마자 배가 고프다 하니 밥상을 간단히 차린다. 역시 내 몫이다. 금방 구운 고추전을 한 장 썰어 놓는다. 숟가락 놓기 바쁘게 뭐 도울 일 없느냐 묻는다. 동생 가족 셋도 아침 먹지 않고 출발한다고 기별이 온다. 아내가 급히 밥솥을 씻어 쌀을 안친다. 생업이 바쁜 큰형수와 제수를 대신하여 아들들이 총출동한다.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어서 손발도 척척 맞아돌아간다. 밥 되자마마자 동생네 가족이 들이닥쳐 반찬이 부실해도 군소리없이 한 그릇씩 뚝딱 비운다. 막내 조카는 달걀 깨는 것이나 참깨 찧는 일 같은 게 있으면 자기가 하겠노라 나선다.

 

생선 찔 동안 돼지고기 덩어리를 물에 담근다. 핏물을 빼야 한단다. 보통 때는 앞다릿살인데, 올해는 갈빗살이다. 열두 시 넘어 점심 먹으려면 열한 시쯤부터 삶기 시작해야 한다. 한 시간 일이십 분은 족히 삶아야 하기 때문이다. 돼지 넣은 솥에 된장 한 국자 넣고 생강 가루 조금 뿌려주고 쌍화탕 한 병도 부어준다.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잡는 게 핵심이다. 이것저것 넣은 뒤 뚜껑을 덮는다. 강아지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고리를 바투 맨다. 그러는 동안에도 전 굽는 두 전사는 손을 쉴 틈이 없다. 그러는 동안 나는 모자란 술을 더 사온다. 올해는 진주막걸리, 이순신막걸리, 맥주 들이다. 아버지 산소에 꽂을 꽃도 몇 송이 사둔다.

 

어제 어머니가 양념에 재워놓은 엘에이(LA)갈비를 큰 솥에 넣고 장만할 즈음 드디어 돼지고기가 익었다. 냄새가 푸짐하다. 갈빗살이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배고픈 것보다 술 마려운 걸 참지 못하는 형제들이 큰 상에 둘러앉았고 첫 개시는 내가 썰었다. 실제로는 동생 칼질이 윗길이다. 김이 풀풀 나는 고기 접시를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아 막걸리, 소주, 소맥 들을 따르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 갈비도 익었다.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난다. 아마 양념에 재워 밤새도록 거실에 두는 동안 느타리버섯이 먼저 익은 때문일 것이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번갈아 먹으며 부른 배를 두드린다. 명절은 이래서 좋다.

 

이발하러 나간 조카가 돌아오고 늦게 일어난 아들도 달려오고, 큰형의 아들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왔다. 모일 가족은 다 모였다. 그래도 조카 몇이 안 보인다. 어쩔 수 없다. 생업 바쁜 형수와 제수도 얼굴 볼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오후엔 나물 삶고 볶을 차례다. 어머니가 감독을 맡고 작은형이 나섰다. 녹두나물, 콩나물, 도라지, 미나리, 고사리 이렇게 다섯 종류다. 많을 때는 아홉 가지 나물을 만들기도 했었다. 일곱 가지로 줄어들었다가 이제 다섯 가지다. 먹을 땐 맛있지만 하나하나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이것도 많다. 종류별로 하나하나 집어넣고 알맞은 시간 동안 삶거나 데치고 건져 낸다. 오래 방치하면 상할지 몰라 냅다 들고 선풍기 앞으로 달려가는 건 내 몫이다. 특히 녹두나물은 금방 상할 우려가 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왜 이 나물이 숙주나물로도 불리는지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한다.

 

돼지고기 삶은 육수는 버리자니 아깝다. 어머니 냉장고 냉동실에 있는 무 시래기를 꺼낸다. 작은형이 특히 좋아하는 국을 끓일 차례다. 시래기를 듬뿍 넣고 무도 어슷 썰어 넣는다. 죽순, 고사리 따위 각종 채소류를 되는 대로 넣는다. 먹다 남은 수육도 아주 조금 넣는다. 된장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우리집에선 이 국 한 그릇이면 네 아들들 모두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 한 그릇씩 먹은 뒤 나머지는 비닐봉지에 나눠 냉동실로 보낸다. 각자 집으로 가져가서 며칠 동안 두고두고 먹을 반찬이다. 어머니는 돼지고기, 소고기는 아예 드실 줄 모르면서 이런 맛있는 반찬들을 잘도 만들어 낸다. 사랑과 정성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어머니표 시래기국. 돼지고기 삶은 국물에 무청과 죽순, 고사리 등을 넣고 간을 맞춘다. 해장국으로도 최고다.

 


저녁 시간 즈음엔 술이 제법 불콰하다. 운전하여야 할 형제들은 뒤로 앉았고 운전하지 않아도 될 나와 작은형은 마주앉아 소주 한 병 더 비운다. 일곱 시 넘어서자 집에 갈 궁리들을 한다. 추석날 아침 각자 몇 시에 어디로 가야 할지 일러준다. 미천면 안간 큰집에 시간 맞춰 당도하기 위한 작전이다. 큰형과 동생은 각자 알아서 출발한다. 나는 다시 본가에 와서 작은형 태우고 미리 마련한 제물들을 싣고 가기로 한다.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 몇 마디 의논하지만 늘 결론 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안은 형제들 의견이 일치하고 어떤 사안은 좀 논란을 벌이기도 한다. 결론 없는 이야기도 많다. 그런 이야기도 내년 설이나 아버지 제사쯤엔 다시 토론하여 결론 내기도 한다. 그렇게 세월 보내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취기가 가득하다.  장모님과 통화하는 아내 전화를 넘겨받아 몇 마디 인사를 여쭈었다. 죄송한 마음뿐이다. 씻고 화상 입은 손등 치료하고 잠들었다. 꿈은 많았고 복잡했다.

 

드디어 추석이다. 아침 6시에 눈 뜬다. 면도 하고 세수 하고 머리 감는다. 잠꾸러기 아들도 기지개 켠다. 아침밥은 식빵 하나와 사과, 배 한두 조각씩이다. 우유도 한잔 마신다.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본가로 간다. 작은형도 일어났다. 대충 요기한 뒤 손에손에 짐들 들고 대문간 나선다. 우리에겐 오래된 습관처럼 낯익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 일을 언제까지 하고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이제 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중간에 큰형의 문자가 형제간 단톡방에 뜬다. 우리가 가장 늦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과속할 내가 아니다. 이른 아침 시골길을 즐기며 달린다. 몇십 년 전에는 아버지와 마이크로버스 타고 한 시간 걸려 큰집에 갔다. 그 뒤엔 택시 한 대에 오부자가 타고 가기도 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 한 동네에 살 땐 집에서 일찍 일어나 여섯 가족이 걸어서 큰집으로 가기도 했다.

 

큰집에 가서 연로하신 큰아버지, 큰어머니께 인사 올리고 사촌형과 손잡는다. 우리 본가에서 못 뵌 형수와 제수와도 인사 나눈다. 조카들 얼굴도 일일이 다시 챙겨 본다. 병풍을 치고 제상을 놓는다. 부엌에선 동서가 의논좋게 웃으며 제물을 준비한다. 마루에선 형제가 밤을 깎는다. 나는 중간에서 왔다갔다 하며 제물을 진설한다. 늘 비슷한 모양이라서 헷갈리지 않는다. 요즘은 간소하게 차리는 게 대세라지만, 그래서 우리 집안도 좀 바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닌 듯하다.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해진 시점인 건 분명하다.

 

차례 중간에 음복을 길게 한다. 다들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은 탓이다. 돼지고기 몇 점 썰어놓고 탕국을 그릇그릇 나른 뒤 맨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조상의 음덕을 먹는다.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씩들 한다. 막걸리 맛이 괜찮고 고기도 잘 삶았다. 차례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산소로 향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셔져 있고 그 아래 요절한 사촌동생도 누워 있다. 큰형과 내가 벌초를 했었는데,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제법 심하다. 산소 근처 단감을 한두 개씩 따 먹곤 했는데 올핸 아직 설익었다. 산소에 서서 우리 집안의 길고긴 역사를 잠시 반추해 본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열두 살 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199212월에 돌아가셨다. 사촌동생은 십여 년 전 유명을 달리했고 아버지는 2012년 음력 7월에 돌아가셨다. 본래 터전은 미천면 반지리였으나 안간으로 옮아왔고 우리는 19792월 진주로 이사했다. 진주와 안간 사이를 몇 번이나 오고 갔는지...

 

이젠 진주로 달린다. 우리 아버지 차례를 지낼 순서다. 어머니와 아내가 미리 상을 차려놓았다. 대충 순서 맞추고 질서 잡은 뒤 절을 한다. 세어보니 올해는 조카 일곱 명이 빠졌다. 다들 사정이 있다. 특히 스무살 넘은 조카들은 하나같이 아르바이트하느라 추석을 쉬지 못한다고들 한다.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군대 간 조카도 있다. 식구가 단출하니 좁아터진 마루도 비교적 견딜 만하게 됐다. 차례 끝나고 아침인지 점심인지 밥을 먹는다. 온 식구가 빙 둘러앉아 술을 곁들여 밥을 먹는다. 맨밥도 먹고 비빔밥도 먹고 고기도 먹고 생선도 먹는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 산소로 향한다. 그래도 열두 시 조금 넘는 시각이니 다른 해에 견주면 이르다.

 

추석은 이렇게 지나간다. 동생 가족은 산소 들를 겨를 없이 의령 처갓집으로 가고 사촌형은 돌아오는 길에 다시 큰집으로 가고 삼형제가 둘러앉았다.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속이 출출하다. 동그란 밥상을 가운데 놓고 과일과 돼지고기를 차렸다.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가 남았다. 두어 잔 먹다 보니 칼칼한 게 먹고 싶다. 내가 벌떡 일어섰다. 생김치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은 뒤 산적 조금, 두부 조금, 고추전 조금씩 넣는다. 조선간장을 아주 조금 부어 약간 짠맛이 돌게 한다. 그러고서 사오 분 더 끓인 뒤 내놓는다. 아무 맛도 없지만 자꾸 숟가락, 젓가락이 가는 반찬 겸 안주이다. 돼지고기 수육 먹다 남은 것이라도 넣으면 더 맛있는데 어머니 때문에 고기는 넣지 않았다. 그래서 2% 정도 부족한, 제목 없는 그 무엇이 되었지만 한두 잔 술 안주로는 제법 그럴싸하다. 내 솜씨 자랑이다.

 

생업을 하느라 날밤을 샌 큰형수는 큰방 구석에서 코를 골고 나는 작은방에 드러누웠고 큰형은 마룻바닥에 그러누워 기지개를 켠다. 작은형은 고속도로 정보를 부지런히 챙겨본다. 술이 깰 즈음 창원으로 떠나는 작은형이 일어서고 우리도 덩달아 일어선다. 어머니 혼자 남게 됐지만 어쩔 수 없다. 작은형은 이런저런 반찬 가지가 가장 많다. 우리는 추석 전날부터 갖다 날랐으므로 덜하다. 우리도 양손이 묵직하다. 일주일 동안 반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명절이란 이래서 좋다. 만드는 과정은 힘들다. 돈도 제법 든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올 때 한두 가지 반찬-실은 여러 종류이다-이 있으니 배가 부른 느낌이다. 볼링 치러 가자, 노래방 가자 하는 말은 계속 이어졌지만 실행하진 못했다.

 

내년부터는 각자 한 가지씩 제물을 만들어 오기로 작정을 하긴 했다. 과일류, 생선류, 전류, 나물류, 기타 등등 나누면 네 형제가 못할 리 없다. 그러면 어머니는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구체적인 작전은 연말 안에 형제 모임 있을 때 의논키로 하였다. 그러고 남는 시간에는 좁은 집 안에서 복작거리지 말고 횟집이든 장어집이든 닭집이든 오리집이든 나가서 명절를 즐겨보자는 의논이 된 것이다. 이만하게 의논이 진행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페이스북에 보면 차례 간소화에 성공한 많은 가족들이 연휴 동안 즐겁게 여행다니는 모습이 제법 많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 문화가 바뀌어가는 탓이다. 호텔에서 차례를 지내는가 하면 숫제 해외에 가서 고향 쪽으로 절 한두 번 하고 마는 가족도 많다. 그것만 해도 다행이다. 설날, 추석이라고 해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조상이니 차례상이니 하는 말만 꺼내고 경기 일으키는 사람도 아주 많은 세상이다. 조상 덕 기리고 가족끼리 화친하며 건강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그 방법과 내용은 제각각이어도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조상 음덕 기리고 형제간 우애 다지고 웃고 떠들다 보니 추석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늘 비슷비슷한 명절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까닭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이유 없이 큰 소리로 웃으며 즐겁게 보낸 명절이다. 해마다 조금씩 다른 것도 있지만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음식 가짓수나 양이 줄어들고 모여드는 가족도 한두 명씩 들쭉날쭉해진다. 유행과 시절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나이드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런 명절이라도 있으니 형제들, 조카들, 사촌들을 만나고 어른들께 인사 올릴 마음을 차릴 수 있다. 피곤하고 복잡한 날이 지나간다. 마음 한 구석은 좀 아리고 가슴 한 구석은 좀 들뜬다. 그런 추석이다.

 

추석 다음날 저녁으로 내가 만든 비빔밥이다. 추석 나물과 달걀부침, 고추장, 참기름, 산적 따위를 넣었다. 보긴 이래도 맛은 끝내줬다.


추석 다음날 아내와 함양 상림에 갔다 온다. 피곤한 것을 치자면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새로 만든 노량대교 구경 갈까 하다가 상림을 택했다. 한 시간 남짓 달려갔더니 우리보다 훨씬 먼저 온 가족들이 엄청 많았다. 걷다가 쉬다가 사진 찍으며 시간을 죽였다. 점심으로 수제비와 묵밥 먹고 돌아왔다. 낮잠 좀 자고 나니 저녁이다. 본가에서 가져온 추석 나물을 기준으로 하여 비빔밥을 준비한다. 내일모레 입을 셔츠를 다려준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나섰다. 달걀 두 개 부쳐 넣고 산적도 잘게 썰어 넣었다.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것은 고추장과 참기름이다. 대충 비벼 놓았더니 아들도 맛있다 한다. 아내는 잠에서 덜 깨어서인지 몇 숟갈 뜨고 말았다. 나는 이제 좀 피곤하다. 영화라도 한 편 봐야 하는데...

 

 

2018. 9. 25.

시윤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수타임  (0) 2018.09.28
우리 어머니  (0) 2018.09.27
문 대통령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연설문  (0) 2018.09.21
9월 평양공동선언  (0) 2018.09.19
수육백반 한 상  (0) 2018.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