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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자동차 소리 듣지 않고 뒤벼리 걸어가는 방법

by 이우기, yiwoogi 2017. 11. 1.


 

도동 동부시장 부근에서 중앙 지하상가 에나몰까지 걷는다. 오후 530분쯤 출발하여 640분쯤 도착한다. 꽤 멀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생각보다 가깝고 생각만큼 즐겁고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스스로 흐뭇해지는 시간이다. 많이 쌀쌀해진 날씨지만 걷는 데는 더욱 좋다. 정장 입고 구두 신었지만 일단 도전한다.

 

흔히 진주시청 뒷길이라고 일컫는 길을 걷는다. 인도는 넓지 않다. 도시의 뒷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찻길가에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자동차 수리점, 휴대전화 판매점, 편의점 들이 나직나직하게 붙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넌 오늘 얼마 벌었어?” “, 저녁 밥값은 한 것 같아.” “그래, 그래도 다행이네. 우리는 밥값도 못한 것 같아. 어쩜 좋아?” “그래도 좋은 날도 오겠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주유소는 장사가 안 돼서 그런지 다른 까닭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문을 닫았다.

 

그 앞을 가로막고 선 높은 건물은 진주시청이다. 옛 진양군청 자리에 들어선 진주시청은 진주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건축물에 대한 평론을 할 만큼 식견은 없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답지는 않은 듯하다. 반대로 미래지향적인 도시, 산업경제가 발전한 도시라고 해도 역시 뭔가 좀 모자란 듯하다. 그래도 상징은 상징이고,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만 있다면 뭐라고 할 까닭이 없다.

 

디지털 진주문화대전에서 몇 마디 옮겨 놓는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진주시 청사가 전소되자, 1956년 진주시 본성동에 시청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199511일 도농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주시와 진양군이 각각 폐지되고 통합진주시가 설치되어 1625동에 총면적 712.62를 통괄하게 되었다. 1995년 당시 통합시의 시청사는 1청사(구 진주시청)2청사(구 진양군청)로 운영되었으나 시청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과 통합시의 위상 강화를 위해 통합청사가 필요하여 200153일 현재의 진주시 상대동 284번지[동진로 155]에 행정동과 의회동을 포함하는 지상 10층의 청사를 신축·이전하였다.”

 

시청 뒷길 2차로를 달리는 차들은, 과속방지턱이 있는 데도 꽤나 빠르다. 무엇이 저렇게 바쁠까. 달리는 건 인간의 본능일까 자동차의 사명일까. 초등학교 앞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라 하여 시속 30km 밑으로 달려야 하는데 잘 지키지 않는 것 같다. 경찰 순찰차가 한 대 서 있었지만, 그들은 과속을 단속하려고 거기 서 있는 게 아니다. 뒤벼리 들머리까지 15분쯤 걸린다.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놀린 덕분이다. 서쪽 하늘이 발갛게 물들어 간다. 요즘 하늘은, 마치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죄다 보여주겠다는 듯이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사진에 담지는 못한다. 사진 찍을 위치까지 갔을 땐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뒤이다.

 

뒤벼리 들머리 주유소 앞 건널목을 건너 강가로 내려선다. 뒤벼리는 진주8경 가운데 하나이다. 진주8경의 하나로서 뒤벼리를 말할 때는, 강 건너, 그러니까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바라본 뒤벼리의 풍광을 가리키는 것이겠다. 철 따라 변하는 선학산과 뒤벼리가 남강물에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뒤벼리에서 강 건너 풍광을 구경하는 것도 꼭 설명에 넣어야 할 듯하다.

 



뒤벼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인묵객으로부터 찬사를 받아온 듯하다. 지금은 진주8경이라고들 말하지만 예전에는 진주12, 진주10경이라는 것도 있었던가 보다. 진주12경 가운데 10경 오암유형(鼯巖流螢): 뒤벼리의 개똥벌레라는 게 보인다. 진주10경에는 7경 적벽표아(赤壁漂娥): 일대장강 적벽 아래 빨래하는 소녀들아라는 게 있는데, 이 적벽이 곧 뒤벼리가 아닐까 추측된다.

 

진주12, 진주10경이 세월의 흐름을 붙들지 못하게 되자 19975월 진주8경을 새로 정하기로 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진주시장과 진주시의회 의장을 포함하여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 10명의 고문과 10명의 상임지도위원을 두었다고 하니 규모가 짐작된다. 진주8경 후보지 추천을 접수하니 1000명이 넘는 시민이 55곳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려 뽑은 게 지금의 진주8경이다. ‘8’에 집착했을까. 단양8경이 영향을 주었을까. 10개면 어떻고 12개면 어떻고, 그보다 더 줄여서 5개는 안 되었을까. 아무튼 진주8경은 진주를 상징하는 또 다른 명물임에 틀림없다.

 

뒤벼리 찻길 밑 강가에는 산책길이 이어져 있다. ‘자전거 전용이라고 써 놨는데, 그냥 걸어간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뒤벼리는 여러 모로 진주의 상징이다. 오래된 진주사진전 같은 곳에 가보면 옛적 뒤벼리 사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큰물이 져서 온통 물바다인 사진도 보인다. 깎아지른 벼랑과 좁다란 길, 그 옆을 흐르는 남강. 이런 조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 뒤벼리 좁다란 길을 1980년대 이후 넓히고 넓혀 지금의 왕복 여섯 개 차로로 만든 것이다. 많은 돈을 들였겠는데, 만약 그때 뒤벼리 길을 넓혀 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밑 강가에 산책길을 만든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지만, 역시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주시내 모모한 기관 단체에서 마라톤대회를 열거나 자전거대행진을 하거나 걷기행사를 할 때면 어김없이 뒤벼리를 지나가는데, 만약 찻길 옆 인도로 갈 수밖에 없었더라면 어쨌을까 싶다. 누가 기획하였는지 찾기 어렵지만, 뒤벼리를 오늘날 모습으로 바꿔준 많은 사람이 고맙다.

 

길은 깨끗했다. 머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강 건너, 그러니까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남도문화예술회관, 그리고 그 근처 가겟집 네온사인들이 비치는 모습을 보느라 눈이 열리고 귀가 닫힌 탓이다. 까만 하늘 아래에 오색찬란한 불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불빛의 향연은 진주교로 이어지고 다시 장대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으로 이어진다. 진주교에서 장대동 근처 불빛은 거의 다 모텔 간판 조명이다. 모텔들은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휘황찬란한 색색가지 등을 이용한다. 뒤벼리에서 보든, 칠암동 문화예술회관에서 보든, 진주교에서 보든 이 일대 밤 불빛은 꽤 매혹적, 유혹적이다. 동방호텔도 한몫하는데, 요즘은 공사 중이라 캄캄함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1시간 10분 가량 편편한 길을 걷는데 다리가 아프다. 아프다는 건 엄살이다. 허리가 좀 욱신거리고 허벅지는 팽팽해졌으며 장딴지도 당긴다. 서늘한 날씨인 데도 등줄기에 땀이 아주 조금씩 솟아나는 걸 느끼는 건 꽤 괜찮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사람들 표정도 재미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부지런히 뛰는 사람, 걷는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이미 한잔한 듯 약간 비틀거리며 걷는 두 사람과 그들의 낯선 대화를 잠시 엿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말짱한 정장 차림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지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은 채 천천히 걷는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상상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2017.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