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하늘을 날고 싶어할까. 날개도 없으면서. 하늘을 나는 새가 부러웠을까.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을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아랫마을을 내려다 보았겠지. 높은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탑을 쌓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 비행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꾸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비행기도 없을 것이고 우주선도 없을 것이다. 63빌딩이나 제2롯데월드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아찔함을 즐기곤 했겠지.
하동군은 금오산에 아시아 최장 ‘짚와이어’(Zipwire)를 개통했다고 한다. ‘짚와이어’는 밧줄(와이어로프; 와이어ㆍ로프 모두 줄(밧줄)이라는 뜻이다)을 이용해 동력 없이 활강하듯 내려가는 위험(극한) 스포츠 시설이다. 하동군 금오산 꼭대기에서 금남면 경충사 인근 도착지까지 총 연장이 3.18㎞에 이른다. 무엇이든 했다 하면 최고, 최장, 최저여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심리가 작동한 듯하다. 좋다. 그 긴 거리를 매달려 가는 동안 오금이 저리고 오줌이 지리지 않을까. 시원한 바람과 넓게 펼쳐진 경치를 보면서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케이블카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짚와이어’를 타면서 “야호!” 하는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날고 싶은 꿈을 이렇게라도 푸는구나’ 할 것이다. 나는 죽어도 안 탄다.
이번에는 창원시가 나섰다. 창원시 진해구 음지도와 소쿠리섬을 가로지르는 해상 ‘짚트랙’(Ziptrack)이 내년 2월 들어선다고 한다. 해상 ‘짚트랙’으로는 국내 최장인 1.2㎞다. 여기서도 최장이다. 이 ‘짚트랙’은 통제탑 2개(출발 탑 90m·도착 탑 15m)를 비롯해 하늘쉼터(스카이라운지)와 허공길(스카이워크) 등 부대시설을 내년 2월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짚트랙’ 시설이 완공되면 이용객들은 시속 70㎞ 안팎의 빠른 속도로 해상을 가로지르는 긴장감을 1분여 간 만끽할 수 있다. 재미있는 세상이고, 즐거운 세상이다. 나는 절대 못 탄다. 무서워서.
하동군이 짚와이어를 만들든, 창원시가 짚트랙을 만들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어차피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짚와이어’, ‘짚트랙’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시비를 좀 걸고 싶다. ‘와이어’, ‘트랙’이라는 말도 마땅치 않지만 오늘은 ‘짚’에 눈이 꽂혔다. 왜 그런가.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 적용하는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이 엄연한 어문표기법인 이상, 일반 국민도 아니고 시중 장삼이사도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어겼다면 좀 문제라고 본다. 은연중에 외국어나 외래어는 표기법을 좀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해도 문제고, ‘짚’을 맞는 표기라고 알고 있어도 문제다.
외래어 표기의 기본 원칙은 다섯 가지다. 첫째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 둘째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셋째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적는다. 넷째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섯째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이런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쉽다. 그렇지만 지금은 외래어 표기법 강의를 하는 게 아니므로 이 가운데 셋째 원칙만 자세히 보자.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 받침으로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 이 일곱 가지만 적어야 한다. 그래서 ‘book’는 ‘붘’이 아니라 ‘북’으로 적고, ‘god’는 ‘갇’이 아니라 ‘갓’으로 적으며, ‘rocket’은 ‘로켙’이 아니라 ‘로켓’으로 적는 것이다. ‘ㄹ, ㅁ, ㅇ’은 대체로 잘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말하고자 하는 ‘zip’도 ‘짚’이 아니라 ‘집’으로 적어야 한다. 얼핏 보면 헷갈릴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전문적인 기술 또는 아이디어를 시험적으로 실시하면서 검토하는 연구회 및 세미나’를 가리키는 ‘workshop’은 ‘워크숖’이 아니라 ‘워크숍’이다. ‘웍숍’, ‘워크샵’이라고도 간혹 적는데 ‘워크숍’이 바른 표기다. 그 외의 각종 ‘shop’들은 모두 ‘숍’으로 적어야 한다. ‘커피숖’이나 ‘커피샾’이 아니라 ‘커피숍’이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여러 개 파일을 하나로 묶어주는 ‘ALZip’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도 ‘알짚’이 아니라 ‘알집’으로 적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 이름이 ‘알집’이 된 사연은 좀 재미있다. 각자 찾아보시길. ‘gap’(갭), ‘pickup’(픽업), ‘lap’(랩), ‘snap’(스냅), ‘tip’(팁) 같은 것도 이런 까닭으로 ‘ㅂ’ 받침을 쓰는 것이다.
아무튼 하동군에서 만들었다는 ‘짚와이어’는 ‘집와이어’로 적어야 하고, 창원시가 만든다는 ‘짚트랙’은 ‘집트랙’으로 적어야 한다. ≪틀리기 쉬운 국어문법 어문규범 공공언어 강의≫을 펴낸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임규홍 교수는 이 책에서 “공공언어는 국가기관이나 공적으로 관련된 단체에서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국가가 규정한 어문규정에 맞도록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말과 글은 의사소통의 문제이고 정신적인 문제이며 겨레의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27쪽)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 공공기관에서 ‘짚와이어’, ‘짚트랙’이라고 적은 보도자를 배포했다. 이를 보도할 언론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그냥 주는 대로 적는다. 둘째 주는 대로 적기는 하되 묶음표 안에 설명을 단다(잘못된 표기이지만 한번 봐준다고). 셋째 바른 표기를 찾아서 적는다. 넷째 바른 표기를 찾아서 적되 묶음표 안에 그 까닭을 설명한다(잘못된 표기이므로 우리는 봐줄 수 없다고). 다섯째 바른 표기를 찾아서 적고 묶음표 안에 설명을 넣으며 아울러 해당 기관에 연락하여 잘못된 표기이니 바르게 고치라고 일러준다.
이런 것 가운데 어떤 게 바람직할까. 나는 네 번째 또는 다섯 번째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는 일을 하는 나도 간혹 그런 지적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다시 배운다. 진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서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발전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집와이어’라고 적는 게 맞지만, 하동군이 만든 건 ‘짚와이어’로서 이건 고유명사다. 그러니까 고유명사는 표기법에 좀 어긋나더라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식품 회사 ‘오뚜기’나 자동차 회사 ‘쌍용’은 각각 ‘오뚝이’와 ‘쌍룡’으로 적어야 하지만 회사이름, 즉 고유명사이므로 존중해 주고 있듯이. 여기까지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짚와이어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짚트랙도 고유명사로 볼 수 없다. 하동군이 집와이어의 이름을 가령 ‘금오산짚와이어’라고 지었다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창원시가 ‘소쿠리짚트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 지은 이름은 하루라도 빨리 고치라고 하는 게 맞다. 언론이라면 특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 10. 12.
'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를 소개합니다 (0) | 2017.11.27 |
---|---|
슈퍼 세이버? (0) | 2017.11.21 |
그뤠잇 (0) | 2017.09.29 |
이그나이트 진주 (0) | 2017.09.20 |
‘슈퍼 공수처’와 ‘강력한 공수처’ (0) | 2017.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