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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진주 길 걷기(1) 석갑산-아는 길 낯설게 하기

by 이우기, yiwoogi 2017. 10. 9.

직장생활 25년 만에 가장 긴 연휴를 맞이했다.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추석이어서 안산 처가에 가는 일도 종요롭고 때맞춰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10.1.~15.)도 어쩔 수 없는 유혹이다. 세 명, 단촐한 가족끼리 어디든 언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흔드는 대부분의 것을 포기한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는 연휴를 지난 뒤 1011일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무려 나흘 동안 중간고사를 본다고 한다. 주말까지 끼워서. 어떤 부모는 그러든 말든 자식을 내버려두고 해외여행을 가더라고 아이는 말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처가에 가는 것을 미룬다. 유등축제도 유료로 바뀐 뒤 입맛이 싹 가셔 버렸다. 아이 끼니나 챙겨 주자는 심산으로 모든 것을 던져 버렸다. 집에서 추석 특집 영화나 챙겨볼 요량이었다.

 

누군가 내 머리를 심하게 때린다. 번개가 번쩍 인다. 비봉산에 날아든 봉황이었을까, 숙호산에서 깨어난 호랑이였을까. ‘만날 석갑산만 뒤적거리지 말고 진주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한번 가보면 어때?’라는 물음이 뒤통수를 가격한 것이다. 물음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이라고 할까. 그래, 한번 해보자. 석갑산~숙호산은 그동안 자주 올라 보았으니 그렇다 치고, 가좌산~망진산은 두어 번 걸어가 보았으니 안면이라도 텄다고 치고, 선학산도 아내와 함께 전망대까지 갔다 왔으니 뭐, 생까고 있는 건 아니라 치고, 비봉산도 어릴 적 매미 잡으러 자주 올랐다 내렸다 했으니 영 모른 척한 건 아니라 치고. 이런 핑계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러니 제대로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공책에다 이 산들 이름을 자꾸 써 본다. 산 이름이 정답게 다가온다.

 

준비할 것도 없다. 지도도 필요 없다. 일정도 없고 일행도 필요 없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행운유수해 보자 이런 마음이 든다. 마음을 다짐으로 만들고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그러다가 진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진주의 산들을 이번 기회에 한번 답사해 보자 하는 마음을 정한 것이다.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변에 소문을 낸다. 페이스북에다 알린다. 몇몇 분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부추겨 준다. 한두 분은 동행하기를 원하였지만, 워낙 마음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한 것이어서, 더구나 언제 작파할지 모르는 것이어서 말 없는 말로 사양한다. 드디어 930일이다. 연휴 첫날이다.

 

930: 석갑산-아는 길 낯설게 하기


 

다짐한 것을 실천하기 좋은 날씨다. 아침밥 먹자마자 등산화를 찾는다. 아뿔싸.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신다. 추석 음식 준비하긴 아직 이른데. 아버지 산소 곁에 떨어져 있는 굴밤 주우러 가자고 하신다. 별수 없다. 오전 두어 시간을 어머니와 보낸다. 도토리묵 한 판은 알뜰히 쑬 수 있을 만큼 주웠다. 그러고 나서도 나뭇가지엔 도토리가 조랑조랑조랑조랑 열려 있어서 겨울 날 다람쥐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될 만하다.

 


점심 먹은 뒤 한의원에 가서 아픈 어깨를 다스린 뒤 다시 등산화 끈을 조인다. 그래도 첫날은 석갑산이다. 늘 오르던 곳을 들머리로 잡는다. 오후 다섯 시 넘은 시각이다. 일곱 시에 진주문고근처에서 아내와 아이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먼저 정하여 둔다. 그 시각까지는 하산할 작정이라는 신호다. 석갑산 정상에서 늘 내려오던 곳을 포기하고 고려고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처음 만나는 곳이다.


 

진주 평거동 고분군은 사적 제164호로 지정돼 있다. 설명글에 따르면, ‘평거동 고분군은 평거동 석갑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 고분군이다. 전체 6645의 면적에 6기의 네모난 고분이 있다. 3단 정도의 석축으로 네모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둥근 봉토를 올렸다. 단과 봉토 사이에는 등돌(石甲)을 얹어 석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석축에는 보기 드물게 시기와 무덤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정확한 시기와 주인공을 알 수 있다. 6기 모두 정씨(丁氏) 집안의 무덤으로 고려시대 1079(1호분)부터 1229(6호분)까지 150년 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고분의 주인공 중에는 제1호분의 정렬(丁悅), 4호분의 정언진(丁彦眞)과 같이 고려사의 기록에 보이는 인물도 있으며 제5호분과 같이 부부를 합장한 무덤도 있다.

 

평거동 고분군을 뒤로 하며 내려오는데 제법 어둑어둑하다. 갖가지 묘목을 심어 놓은 밭에서 부부가 경운기를 굴린다. 그 옆으로 산뜻하고 깔끔하게 단장한 집들이 어스름 속으로 잠긴다. 진주-대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발통 마찰 소리는 적막할 겨를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무시무시하다. 오래된 낮은 집과 높은 아파트 사이에 교회당도 보이고 슈퍼마켓도 보인다. 큰 길 건너면 근래에 새로 지은 수십층 초고층 아파트들이 솔숲처럼 우람우람하건만 이 동네는 그런 것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80년대 또는 90년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당도 있고 가든이라 이름 붙인 식당도 보인다. 나도 이런 곳에 둥지를 틀 수 있을까. 연신 두리번거리는 내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간첩이다. 다음에도 계속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동네 생긴 모양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더 유심히 살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