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시간 걸렸다.
오후엔 자동차로 15분 남짓 걸리는 아버지 산소엘 갔다. 지지난주 벌초한 잔디는 예전 중학생 까까머리처럼 단정했다. 봉분 뒤편 높이 솟은 굴밤나무를 향했다. 오늘 목적은 굴밤 줍기다. 벌초 때 눈여겨본 덕분에 올핸 수확이 만만찮을 것임을 알고선 작정하고 찾아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다지였다. 어릴 적 갖고 놀던 구슬만한 굴밤이 지천으로 늘렸다. 순식간에 배낭 반나마 찼다. 한번 지나가면서 한 줌 줍고 다시 돌아보면 또 굴밤이 보였다. 낙엽에 가려져 갈 땐 보이지 않다가도 돌아서면 또 몇 톨이 보였다. 여념이 없다. 귓등에 엥엥거리는 모기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굴밤들은 제 가지와 부딪쳐 투둑투둑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한 가지에 나고도 갈 길이 달라진 형제들에게 아쉬운 이별을 고하는 것이었을까. 어미나무 밑둥에 떨어져 다람쥐 밥이 되겠노라 슬픈 다짐을 알리는 것이었을까.
나에게 들킨 굴밤은 우리 어머니 손길을 거쳐 약간 떫은 맛이 도는 도토리묵으로 환생할 것이고, 다람쥐에게 안긴 놈은 겨우내 그들의 보양식이 될 것이며, 어쩌다 운 좋은 굴밤 몇 톨은 내년 사월 봄바람 따스해질 때 여리디 여린 참나무 묘목으로 돋아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운명도 벌초 기계를 비켜나야만 하겠는데, 기대하긴 어렵고 고대하긴 더욱 난망이다.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 수돗가 대야에 쏟아놓고 물을 부으니 몇 톨이 동동 뜬다. 부지런한 벌레가 침략한 탓이다.
추석 아래 한두 번 더 주워오면 상달 저녁 즈음 형제들의 가을 막걸리 안주가 푸질 것이다. 도토리묵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어머니도 줍는 재미, 만드는 재미로 해마다 한두 판씩 쑤어 주시긴 하는데 이런 재미도 얼마나 더 갈지 알 수는 없다.
1시간만에 다녀온 것 치고는 수확이 제법이어서 마음 넉넉해졌다. 몇 해 전에 쓴 ‘도토리묵’이라는 글이 생각나는 밤이다.
2017.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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