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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이그나이트 진주

by 이우기, yiwoogi 2017. 9. 20.

914일 진주시 내동에 있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제2캠퍼스에서 아주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하기 전에 이런 행사를 하는 줄은 알았는데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지 잘 몰라서 가 보지 못했다. 행사가 끝난 뒤 언론 보도와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글과 사진을 보고 좀 후회했다. 발표자와 관객을 합하여 200명 넘게 모였던가 본데, 다음에는 꼭 가 보리라 다짐했다. 알고 보니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참가하였다. 그 행사 이름은 이그나이트 진주이다. 행사를 마련한 진주시에 손뼉을 쳐 드린다.


 

진주시가 이그나이트 참가자를 모집할 때 낸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그나이트(Ignite)불을 붙이다라는 의미로 2006년 미국의 미디어그룹인 오라일리(O’REILLY)에서 처음 시작한 이래 전 세계 200여개의 도시와 기업에서 열리고 있다. 기존의 지식콘서트 ‘TED’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과는 달리 평범한 시민들이 발표자가 돼 20장의 슬라이드(PPT)를 장당 15초씩 자동으로 넘기며 5분이라는 시간 안에 자신의 경험, 정보, 지식 등을 청중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형식의 의사소통방식을 말한다. 광주, 마산, 나주 등의 지자체와 전국봉사단체협의회, 기업체(LG) 등에서 관련 행사를 개최해 발표자와 청중이 다양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날 참가자들이 발표한 주제는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늙은 꼰대의 스마트한 건강투쟁 Life is miracle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Shall we dance? 진주에서 사진가로 살아가기 진주키다리의 진주사랑 봉사이야기 목말라서 우물 판다 나는 진주 에나 맥가이버 진주토박이 말 이야기 아름다운 진주성을 팝니다 세상을 향한 여행 엄마의 인생을 훔치다 랄랄라 인생 15세의 Challenge

 

제목만 봐도 군침이 돈다. 그래서 또 아쉽다.

 

진주에서 일상을 사는 이야기5분으로 압축하여 들려준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소설이요, 시요, 수필이었을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한 대목 한 대목마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삶의 지혜도 나왔을 것이고 인생에 큰 교훈으로 삼을 만한 이야기가 어찌 없었을까. 뿐이랴. 그분들의 이야기를 20장의 슬라이드로 만든 것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투박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예술적으로 잘 만든 것도 있었을 것이고, 어렵사리 겨우겨우 만들어낸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보는 사람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이그나이트라는 말을 처음 본다. ‘불을 붙이다라는 뜻이라는데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생각할 때 잘 붙인 이름 같다. 11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행사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진주시가 공을 들여 라이선스를 땄다고 하니 그 노력도 돋보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이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은 어린이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참가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많은 시민은 이 행사 소식을 언론을 통하여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행사 이름을 굳이 미국에서 가져온 이그나이트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이그나이트라는 말이 불을 붙이다라는 뜻이라고 모두 쉽게 알 수는 없다. 설명을 들으면 알아듣겠지만, 곧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이 이름을 곱씹어 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이 영어를 잘 알아볼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미국에서 하고 있던 행사를 가져왔으니 그대로만 사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요즘은 없어졌지만 진주엠비시에서 아침마다 방송하던 비봉산의 메아리가 있었다. 성우 두 명이 나와서 진주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이름을 이번 행사에 갖다 붙이면 어땠을까. 누가 뭐래도 비봉산은 진주의 상징이니까. 이미 방송에서 오래전 쓰던 것이라 께름칙하다면 망진산을 써도 되고 남강을 이용하여 다른 제목을 붙여도 되지 않았을까. ‘남강은 흐른다라고 해도 되고 망진산은 알고 있다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미국의 이그나이트를 본받되, 진주만의 새로운 형식의 행사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아니면, ‘비봉산의 메아리’, ‘남강은 흐른다’, ‘망진산은 알고 있다이런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 놓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이그나이트 진주라고 적어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몇 해 동안 하다가, 굳이 슬라이드 20, 시간 5분이라고 못박을 필요 없이 몇몇 조건을 우리 사정에 맞게 조금씩 변경하여 아예 진주만의 새롭고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면 미국에서 가져오긴 했지만 우리는 진주만의 새로운 것으로 변화시킬 힘이 있다. 이게 진주의 힘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그나이트 진주라고 하면 좀 그럴듯해 보이고, ‘비봉산의 메아리’, ‘남강은 흐른다라고 하면 좀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심리는 전혀 없었을까. 어렵게 라이선스까지 획득하여 멋지게 개최한 행사에 대고 괜한 시비를 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지만, 더 먼 미래를 보고 더 진주답게 뭔가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애정과 관심에서 몇 자 적어 놓는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2017. 9. 20.

 

*사진은 진주시청 보도자료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