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밀 것 없고 감출 것 없는 민낯 그대로의 콩국수와 열무김치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오후 햇살이 뜨거울 때 콩을 삶고 갈아 콩국을 만들었다. 얼음을 담가 시원하게 했다. 국수는 한 다발을 알뜰히 삶았다. 냉장고에 있던 열무김치와 소금을 챙겼다. 혼자는 힘겨워 친구를 불렀다. 할머니 열 명이 놀고 있는 장대동 골목 안 놀이터로 가져갔다. 모두 한 그릇씩 살뜰히 비웠다. 할머니들은 국수보다는 콩국을 더 열심히 드셨다고 한다. 그러고 남은 것을 다시 본가로 가져왔다. 일요일 저녁 본가에 가기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시장을 가고 아버지 혼자 점심을 때워야 할 때가 많았다. 돼지고기두부찌개를 직접 해 드시기도 하고 라면을 끓여 드실 때도 있었다. 날이 더워지고 입맛이 없어지는 오뉴월부터 초가을까지는 콩국수를 자주 해 드셨다. 어머니는 콩 한두 되를 삶아 놓았다. 아버지는 먹을 만큼만 덜어내어 믹서에 곱게 갈았다. 국수도 딱 1인분만 삶았다. 양이 적으니 오히려 더 잘 삶아진다고 했다. 직접 해 드시는 게 어머니가 해 주는 것보다 더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점심 끼니를 참 많이도 때우셨다.
덩달아 나도 콩국수 많이 먹었다. 처음엔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입에서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었다가 소화가 안 돼 다음날 화장실을 들락거린 적도 있다. 입에서부터 위, 장, 항문까지 모두 좋아해야 맞춤음식일 텐데. 그래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잘 먹었다. 그러다보니 짭조름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한 콩국수의 매력에 빠졌다. 여름엔 간혹 중화요릿집에 가서 일부러 시켜먹기도 한다. 이맘때 콩국수는 최고의 한 끼 식사가 된다. 영양분도 충분하다. 콩의 단백질과 지방질을 그대로 살리는 음식이므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을 보할 수 있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열무김치도 이맘때가 제대로다. 시큼하고 새콤하고 달콤하고, 엽채류 특유의 약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열무김치는 한여름 내내 담가 먹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국수를 말아먹으면 열무국수, 보리밥에 비벼먹으면 열무비빔밥이 되는 서민 김치이다. 서민적이지 않은 김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콩국수와 열무김치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속이 든든하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변하지 않는 솜씨가 감사하다. 문득 아버지가 옆에 같이 앉아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듯 느껴져 잠시 울컥했다.
201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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