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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상’이라는 말의 품격

by 이우기, yiwoogi 2014. 12. 23.

상은, 잘한 일이나 훌륭한 일을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물건 또는 돈을 가리킨다. 국민학교 때 공부를 잘해 상을 제법 받았다. 상품은 공책이나 연필이었다. 공책이나 연필보다 더 좋은 건 어버이의 칭찬이었다. 졸업할 땐 개근상을 받았다. 상품은 따로 없었던 것 같은데, 6년 동안 한 번도 학교를 빼먹을 만큼 아프지 않았다는 뜻이니 스스로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6학년 때 학예발표회에 나가 시조를 써서 3등상을 받았다. 전교생의 우렁찬 손뼉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고등학교 땐 무슨 글을 써서 상을 받았는데 만년필이 따라왔다. 상을 받는 사람은,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해야지, 웬만하면 결석하지 말고 열심히 학교 다녀야지, 무슨 대회에 나가면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런 결심을 하게 된다. 상을 받는 사람은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게 당연하다. 상이라는 게 갖는 힘이다.

상을 주는 쪽도 이런저런 생각이 없을 수 없다. 뭔가 잘한 일을 한 사람이 앞으로도 쭉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우등상, 개근상도 마찬가지고 무슨 대회를 열어 심사 결과를 가지고 주는 상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과 기량을 더욱 갈고 닦으라는 격려를 담아 준다. 그냥 상장 한 장만 주기에 좀 모자라지 않나 싶어 상금을 주기도 하고 상품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냥 상장만 주고 나중에 승진 인사나 연봉을 매길 때 점수를 더 주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상을 주는 쪽은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갖는다. 상을 주는 쪽은 뭐든 주려고 하지 뭘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게 상이다. 그래서 상은 멋진 것이고 고마운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라는 말은 모두를 설레게 한다.

하는 일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공문을 받는다. ‘2014년을 빛낸 인물’, ‘최고 경영대상’, ‘경영혁신 대상’. 대충 이런 이름이 붙는 상을 주겠다며 열댓 장짜리 공문을 보내온다. 보내는 쪽은, 즉 상을 주겠다는 쪽은 여기저기 자료를 수집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본 결과 우리를 수상후보로 선정하게 되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보내는 쪽, 즉 이 이름도 거창한 시상식의 주최자는 주로 서울에 본사를 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모모한 언론사이고, 중앙부서와 이름을 처음 듣는 이러저러한 기관들이 후원하고 있다. 일단, 고맙고 반갑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기쁘고 설레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공문에는 꼭 단서가 붙는다. 상을 받기 위해서는 수상자 쪽에서 일정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돈인고 하니, 일단 심사비가 들고, 시상식 행사비가 들고, 수상자들의 수상 사실을 주최자로 되어 있는 신문에 광고해야 하니 광고비가 들고, 수상자들의 공적사항을 책으로 엮으려고 하니 출판비가 들고, 또 어떤 경우에는 상패 값도 든다고 한다. 그래도 상을 준다 하니 들뜬 마음에 얼마나 드느냐 물으면 대기업은 3000만 원 정도, 중소기업은 2000만 원 정도, 그 외 기관단체나 국가기관 등등은 1000만 원 정도인데 네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네고? 모르겠다. 깎아줄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1000만 원을 주고 그 상을 받으면 1000만 원어치 명예가 생기고 자랑스러움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1000만 원어치 홍보 효과가 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서 옆으로 의논하고 위로 보고하느라 며칠 시일을 끈 뒤,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면 또 그냥 넘어간다. 상이라는 것의 꼬락서니가 이렇다.

연말이 되면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나 기관단체를 발굴하여 상을 주어 격려하는 것은, 그래, 좀 좋게 봐서 미풍양속이라고 치자. 상을 주려면 그냥 상장만 주든지, 그냥 상장만 주기에 뭣하면 상금을 조금 주든지 아니면 한 2~3만 원 정도 하는 시계 하나 주면 끝날 일 아닌가. 상을 받으면 그 자체로 명예가 높아지는 것이니 굳이 부상이나 상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데 이건 거꾸로 상을 줄 테니 돈을 내놔라고 하는 꼴이니 우습지 아니한가. 왜 상을 주면서 덧살을 붙이고 또 붙여 1000~3000만 원을 받으려고 하는가. 더 웃긴 건 기껏 상을 주겠다고 했다가 참가비를 내지 않으면 상을 안 준다고 하니 섭천 소가 웃을 일 아닌가. 그래서 수상자라고 하지 않고 수상후보라고 했던가. 수상후보는 돈 많은 순으로 뽑는가. 이러니 상이라는 아름다운 제도를 핑계 삼아 장사꾼 행세를 한다는 소리를 안 듣겠는가.

그런데도 이런 상을 받은 어떤 기업과 기관 단체들은 상 받은 사실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홍보한다. 그것도 홍보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긴 없겠다. 또 몇몇 정부기관들은 이런 시상식을 후원하고 있다. 그 속내를 모르진 않을 텐데. 언론사가 주최하니 뭔가 켕겨 억지로 후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아무리 양보하고 양보해도, 제대로 돌아가는 모양새는 아닌 것 같다. 상이라는 말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4.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