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면 어려운 이웃들을 더 생각하게 된다. 인지상정이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기름을 더 때야 하고, 옷은 더 두꺼워야 한다. 혼자 살아도 그렇고 여럿이 모여 살을 부비고 살아도 겨울에는 이래저래 돈이 더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거리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한다. 언론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손잡고 이웃돕기 성금을 모은다. 누가 돈을 얼마나 내었는지 얼굴과 함께 방송해준다. 돈 내는 일부 사람의 속마음대로 자랑도 좀 해주고 낼까 말까, 얼마를 낼까 망설이는 사람을 부추기는 효과도 있겠지. 사랑의 온도탑이라는 것을 만들어 올해는 몇 도까지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그런 것을 일부러 언론으로 널리 퍼뜨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배추 수천 포기를 김장하여 골고루 나눠준다. 골목쟁이까지 연탄을 나르느라 고관대작들도 얼굴에 숯검정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엔 온정이 넘친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이웃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다 부모 잃은 아이들,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 정신과 몸이 아파 혼자 먹고살 수 없는 사람들, 아들 먼저 보내고 며느리는 도망가고(반대로 딸 먼저 보내고 사위는 도망가고) 하는 수 없이 손자, 손녀 키우며 사는 할머니들처럼 우리 사회에는 혼자서는 도무지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 사람들은 누군가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주고 기름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든 얼어 죽든 어쨌든 죽을 수밖에 없다. 죽지 않으려면 이웃집 담을 넘어야 하고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칼부림을 해야 한다. 담을 넘을 수도 없고 칼부림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린 사람도 많다.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일들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정말 못살 것 같은 한생을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나라는 이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넉넉히 주지 않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더울 때는 홑이불을 주고 추울 때는 핫이불을 줘야 할 텐데, 일 년 내내 홑이불 한 장만 주는 것 같다. 어린 아이나 노인들의 밥그릇은 좀 작아도 되겠지만 한창 나이인 젊은이에겐 큰 밥그릇에 밥을 채워줘야 할 텐데, 애나 젊은이나 어른이나 하나같이 밥 한 공기만 주는 게 아닐까. 여름에는 선풍기가 필요하고 겨울엔 난로가 필요한데 부채 하나만 주고는 일단 버텨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고서 나머지는 은근슬쩍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정부도 언론도 국민들의 측은지심을 건드린다.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준 뒤 “우리 사회는 아직은 살 만한 사회이다.”라고 떠벌린다. 사랑의 온도가 높아지는 우리 사회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처님의 자비가 넘친다고 노래한다.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 자원외교의 실패, 방위 비리로 낭비한 돈을 만일 어려운 이웃돕기에 제대로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 무상급식이나 대학 반값 등록금 같은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자의 손자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먹고살 만큼 재산을 모아놓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 당장 내일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일에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평균적인 삶을 사는 국민이 일 년 동안 버는 돈의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 되는 돈을 한 달에, 또는 하루 만에 버는 사람에겐 좀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도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당연히 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을 나 몰라라 제쳐두고,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성금을 내어달라.”고 말하는 정부나 언론은 좀 낯간지럽지 않을까. 적십자회비 5000원을 몇 해 동안 한 번도 안 낸 사람이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닐까. 국민들이야, 그들이 다 내 이웃이고 형제들이니 성금을 내지 말라고 해도 주머니 사정 봐서 얼마라도 내겠지. 봉사단체를 만들어 떼거리로 모여 무엇을 도와줄까 궁리들을 하겠지. 그래도 뒤집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살 만한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4.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