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후 쉬고 있는데 병장 한 명이 나에게 “야! 너랑 똑같은 대위가 하나 왔다!”고 말했다. 나는 일병이었다. “네?” 기분이 묘했다. 대위가 새로 배치되어 왔는데 나와 닮은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오전에 동료 병사들이 나를 보고 키들키들 웃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닮아도 많이 닮은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고 대위라는 분은 나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궁금증이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언젠가 만나지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한 이틀을 더 보낸 것 같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상황실 앞 보초를 섰던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보곤 잔뜩 긴장했다. 군인들 걸음걸이가 대개 엇비슷한데 그 그림자는 군인다워도 너무 군인다웠던 것이다. 어깨에 힘을 잔뜩 넣은 채 오른쪽 겨드랑이엔 서류 뭉치를 끼웠고, 왼팔은 힘차게 앞뒤로 휘저으며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서류를 낀 팔의 각도와 앞뒤로 휘젓는 팔의 각도는 자로 잰 듯했다. 키는 꼭 나만했다. 그가 점점 더 다가오자 나는 왜 병사들이 나를 보면서 그렇게 키득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와 아주 많이 닮았던 것이다.
고 대위는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시간 지키기를 칼같이 했고 지나가다가 조금이라도 군기가 흐트러진 병사를 보면 그 자리에서 얼차려를 주었고 담배꽁초 하나라도 눈에 띄면 반드시 누군가를 불러 줍도록 했다. 말은 별로 없고 웃지도 않았다. 상황실에서 작전 회의를 할 때는 대대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 말도 나돌았다. 병사들은 점점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아무리 군기로 돌아가는 군대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 사는 군인들도 결국 인지상정(人之常情)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감정을 지닌 사람인데, 오로지 군인이기만을 요구하는 고 대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으로 화해하고 서로서로 녹아들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까.
병사들은 고 대위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었다. “야, 너희 형님 왜 그러냐?”라는 말은 기본이고 선임병들은 대놓고 “야! 고 대위, 야이 씨발아!”라고 내뱉기도 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아무런 반응 없이, 대꾸도 없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고 대위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무섭도록 정확하게 해 나가고 있을 뿐이라는 걸 내가 이해했던 것 같다. 고 대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동료 병사들이 나에게라도 화풀이를 하지 않으면 뭔가 더 큰 불미스런 사고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도 같다. 그게 당시 나에게 주어진 어떤 임무는 아닐까 여긴 것이다.
고 대위는 예닐곱 달쯤 있다가 상급부대로 전근 갔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능력이 출중했던지 연대장이 무리해서 데려갔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인지는 알 길 없었다. 병사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상병이 된 뒤에도 나를 “이 상병”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 대위”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했다. 고 대위는 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앙금이 남았던 것이다. 몇 달 동안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고 대위는 점점 잊혀졌다. 하지만 내 마음속 고 대위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철두철미하게 해나가는 전형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개밥에 도토리처럼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가르쳐 주었다. 2014.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