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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부모

by 이우기, yiwoogi 2014. 11. 9.

198511월 어느 날 진주대동공고에서 학력고사를 보았다. 그 전날 예비소집을 했고 다음날 시험을 치렀다. 어머니는 검은색 직육면체 보온도시락에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싸주셨다. 반찬이나 국이 특별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늘 먹던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었던 듯하다. 그래도 큰 시험 보는 날이니 택시 타고 가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 나가신 것 같았다. 고사장 앞에 간 나는 좀 이상한 것을 보았다. 학생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후배들이 으쌰 으쌰!” 하면서 응원하는 모습도 좀 이상한 기분으로 보았다. 부모들은 기도하고 있었고 흐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시험 한 번으로 아들딸들의 인생이 엇갈린다고 생각하면 간절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후에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그때까지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거기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험 보는 학생보다 부모가 더 긴장하고 애태우신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다 그렇다.

어찌어찌하여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하던 날 부모들이 많이 왔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도 아닌데 열아홉, 스무 살이면 스스로 학교 찾아가고 강의실 찾아가고 하는 일에 아무 문제도 없는데 부모들은 아이들이 걱정되었던가 보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다닌다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셨다. 데모가 크게 벌어진 날 뉴스에 나오면 너는 데모 하지 마라!”고 한마디 하셨을 뿐이다. 논쟁을 벌인 적은 많았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학생기자를 하는지, 선후배들과 문학모임을 하는지, 동아리는 어디에 들어갔는지, 성적은 어떤지, 군대는 언제 갈 것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신 듯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을 뿐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한 적은 거의 없다. 모꼬지를 간다고 하면 웬만하면 가지 마라!”고만 하셨지 누구랑 어디를 왜 가는지 따위는 묻지 않으셨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하긴 할 건지, 한다면 어디에 원서를 넣을지에 대해서도 한두 번 물어보셨을 뿐 다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놔두었다. 물어보신댔자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걸 시시콜콜 물어볼 만큼 한가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니까 무관심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더 많이 바쁘다. 자녀들을 대학에 입학시키고 나면 이제 성인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는 것 같다. 무슨 과목을 수강하는지,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는지조차 궁금해 하고 간섭하는 것 같다. ‘간섭은 아니다라고 생각하시겠지. 군대 가기 위해 휴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대로 복학은 어떻게 하는지,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엔 어떤 것이 있는지, 생활관에 들어가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자녀들이 그러한 것의 혜택을 보도록 하기 위해 애쓰신다. 그러자니 당연히 학교 홈페이지를 뒤져보게 되고 학교에 지인이 있으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곤 하신다. 스무 살,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결정하고 심지어 결혼을 해도 되는 어른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세 살짜리 아이를 물가에 앉혀놓은 것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신다. 자녀가 한두 명뿐이니 더 잘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또한 대학생이 되어서도 스스로 앞가림을 못하는 애어른이 많은 세태여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애어른을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건 하나뿐인 아들이 대학에 가게 될 때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다201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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