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로 이사 오기 전이었고 고샅길을 마음대로 쏘다닐 때였으니 열 살이거나 열한두 살쯤인가 보다. 담방구 놀이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문둥이’ 한 명이 오고 있는 게 보였다. 꾀죄죄한 차림에 다리는 절고 있었고 한쪽 팔이 없는 듯 소맷자락이 펄럭였다. 한 이삼십 미터쯤 다가왔을 때였다. 철없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이, 문디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애는 “야이, 문디 새끼야, 우리 동네 뭐 얻어먹으러 왔노?”라고 기세 좋게 외쳤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는 삐쭉삐쭉 뒷걸음질 치거나 아예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기 일쑤다. 그러면 다시 우리는 “와하하!”하면서 쾌재를 부르곤 했다.
그 시절 한센인(나병환자)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시골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동냥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서웠다. 꿈에 나타날까봐 무서운 생김새부터 몸동작이나 어눌한 말투 등 우리 같은 어린애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이들을 잡아 삶아먹으면 병이 낫기 때문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직접 들은 적 없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들 사이엔 사실이자 진실이었다. 그리고 공포였다. 그래서 떼거리로 모여 있을 때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속 시원하게 욕을 해주고 놀려주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 한센인은 우리로부터 멀리 달아나거나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뭐라고! 이 눔의 새끼들이, 함 죽어볼래? 잡아 묵어 삐릴 끼다.”라면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우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흩어져 달아났다. 누굴 잡으러 가는지 뒤돌아보면서…. 나는 집으로 달려들어 신발을 감출 새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바느질 중이던 어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헛웃음만 지었다. 그 한센인이 나 말고 다른 놈을 잡으러 갔기를 바라던 나의 기대는 1분쯤 뒤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짐씨, 여기 도망온 애 내놓으소!” 깜짝 놀란 어머니는 대번에 사태를 파악하고 “여긴 그런 애 없소.”라고 단호히 말하며 나를 보호했다. “아, 요게 신발이 이렇게 있는데 거짓말하끼요?” 아, 나는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콩닥거려 죽을 것 같았다. 목이 바짝 말라 밭은기침이 나오려 했다. “아, 글쎄, 모른다니까. 어서 갈 길이나 가소. 오늘은 동냥 줄 쌀도 없소.” 어머니는 매몰차게 대꾸했다. 10분 넘게 실랑이하던 그는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들어올라카요?”라는 어머니의 고함을 듣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 듯했다. 나는 지옥까지 갔다 왔다. 그날 어머니께 된통 야단을 맞았음은 불문가지다.
그 뒤 나는 한센인뿐만 아니라 ‘일반 거지’를 대할 때도 막대놓고 놀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날 일은 두고두고 머리와 가슴속에 하나의 죄의식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렇다.
기자생활을 하던 어느 해 나는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광명마을’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광명마을은 한센인 집단 거주지로서 그들은 돼지를 길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인근 주민들이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에 살기 어렵다며 진정을 넣은 것이다. 나는 처음엔 그곳이 한센인 집단 거주지인 줄도 모르고 갔다. 안내를 받아 그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에 들어선 순간 나는 잠시 동안 몸이 굳는 듯했다. 20년 전쯤 그날의 일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애써 침착하기를 되찾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주었고,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의 처지는 이해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고 또 몇 년이 흘러 창원에서 기자노릇할 때다. 고성군청의 사회복지사가 나라에서 주는 자원봉사상 같은 것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희생적인 삶을 하루 동안 동행취재하게 되었다. 그를 따라 간 곳은 고성군 바닷가 어느 마을이었다. 막연히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떠올리며 찾아간 곳은 역시 한센인 집단 거주지였다. 사회복지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들을 도왔는지를 그들로부터 직접 오랫동안 들으며 메모했다. 그때 역시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처음엔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더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날의 죗값을 치를 길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여 취재했다.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이 진짜 문둥이들아’를 읽다가 이런저런 추억들이 생각나 몇 자 적어 놓는다. 박경철의 이 짧은 글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지금 다시 말한다. “그땐 철이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01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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